1492년 4월에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가 4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로렌초의 장남인 피에로 데 메디치(1472-1503)가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피에로의 무능과 전횡으로 메디치 가문은 위기를 맞았고, 도미니쿠스회 수도사 사보나롤라(1452~1498)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1494년 8월 프랑스 샤를 8세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왕국의 상속권을 내세워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피렌체는 밀라노에서 나폴리 왕국으로 이동하려던 샤를 8세의 이동로에 자리 잡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했다.
11월 17일에 샤를 8세가 피렌체에 입성하자 피에로는 샤를 8세의 요구를 모두 수락하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이러자 피렌체 시민들은 분노하였고, 11월 21일에 샤를 8세와 피렌체 시민들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때, 사보나롤라는 사를8세와 협상에 성공하여 피렌체는 프랑스군의 약탈을 피할 수 있었다.
11월 28일 샤를 8세가 피렌체를 떠난 후, 피렌체 시민들이 메디치 가문을 추방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피에로를 비롯한 메디치가 사람들은 피렌체에서 도망쳤다. 이후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의 권력을 움켜쥐었다.
사보나롤라는 피렌체를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개혁에 착수하면서 사치와 세속적 타락을 경고하면서 종교적 영성을 강조했다.
1495년에 보티첼리는 두 개의 그림을 그렸다.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이다. 사보나롤라의 설교로 촉발한 그리스도교 신앙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첫 번째 그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함>이다.
이 그림의 주문자는 도나토 치오니 가문의 두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사보나롤라의 추종자인 ‘피아뇨니’ 즉 ‘우는 사람들’의 회원이었다. 그림은 산타마리아 마조례 성당에 위치한 도나토 치오니 가문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하여 제작된 듯 하다.
바위 무덤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은 성모 마리아 등의 강렬한 슬픔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애도하는 사람은 6명이다. 가운데에 그리스도가 있고, 성모 마리아는 사도 요한에 기댄 채 쓰러져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열두 제자 중 그 곁을 지킨 유일한 제자였다.
한 여인이 그리스도의 머리를 받치고 있고, 왼편의 여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왼편 아래의 여인은 얼굴을 그리스도의 발에 포개고 있으며, 아리마대의 요셉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그리스도의 수난 도구인 못과 가시면류관을 들고 있다.
의회 의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 총독에게 청하여 예수의 시신을 인수받았다.
「요한복음」의 관련 부분을 읽어보자.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요한복음 19장 25-26)
“그 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요셉은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렸다.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이 두 사람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요한복음 19장 38-41)
두 번째 그림은 <성 히에로니무스, 성 바울로, 성 베드로의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이다.
이 그림은 폴리치아노가 수도원장으로 있던 피렌체의 산 파올리노 성당에 소장했던 작품으로, 19세기에는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공이 소장했으며, 이후 국가에 귀속되었다.
그림 중앙에는 그리스도의 시신이 축 늘어져 있고, 비탄에 잠긴 창백한 얼굴의 성모가 실신한 채로 성 요한의 부축을 받고 있다.
오른쪽 화면에는 믿음 깊은 여인이 그리스도의 머리를 받치고 있다. 왼쪽 화면에는 상반신을 드러낸 성 히에로니무스(347-420 금욕의 성인)가 돌멩이로 가슴을 치고 있고, 그 뒤에는 성 바울로(5-67)가 검을 들고 있다. 왼쪽 화면 아래에는 한 여인이 그리스도의 두 발을 만지고 있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인 듯 하다.)
오른쪽 끝에는 성 베드로가 홀로 서 있다. 작은 동굴의 한가운데에서는 석관의 가장자리를 볼 수 있다.
보티첼리의 두 그림 모두 종교화이다.
이처럼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그림과는 멀어졌다.
( 참고문헌 )
o 바르바라 다임링 지음·이영주 옮김, 산드로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5
o 도미니크 티에보 · 장희숙 옮김, BOTTICELLI, 열화당, 1992
o 마키아벨리 지음 · 권혁 옮김, 군주론, 돋을새김, 2005
o 실비아 말라구치 지음 · 문경자 옮김,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7
o 키아라 바스타외 지음 · 김숙 옮김, 보티첼리, 예경,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