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을 꼽으라면 ‘비전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정치를 보아도 그렇고, 경제를 보아도 그렇다.
힘의 균형이 깨져버린 정치권을 복원시킬만한 힘이 만들어지지 않고, 경제는 침체에 빠져 젊은 실업자들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사회양극화는 그 간극을 더욱 벌리고 있다. 한마디로 안개 속을 헤매는 상황이다.
문화중심도시의 비전 의문
광주시민들에게 지난 5년간 문화중심도시의 화두는 ‘비전’과 연관지어 아무런 연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말의 성찬과 화려한 미사여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광주시민들의 염원과 목표, 집념과 각오가 담겨진 ‘비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W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이면우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비전은 “듣는 사람의 가슴이 울렁거려야 한다. 신바람이 나야 한다. 어서 그날이 왔으면 하고 조바심이 나야 하고, 힘이 솟아야 하며, 힘든 과정의 고통을 극복하는 자극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광주문화중심도시에 대해 시민들이 과연 ‘비전’을 생각할 수 있을까?
관계자들과 프로젝트 수행자들에게만 가슴 떨리는 감격의 ‘문화중심도시’라면 그건 참으로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광주의 미래를 담보하는 중차대한 사업으로 시민과 행복하게 만나야 한다.
광주문화중심도시 어젠다가 광주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광주문화중심도시 조성이 문화로 꽃피고 재생하기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염원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문화도시로써의 지위가 삶의 질이 아주 양호하다는 지표가 되고, 지역사회의 여건이 유족하며, 변화에 능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광주시민이 문화에서 경제적 번영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결코 모순되거나 낮은 차원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는 3월 28일이면 지난해 8월말 국회에서 통과되었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다. 광주문화중심도시 사업이 제도적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국책사업으로 진행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늦어도 올해 5월까지는 법정 종합계획안이 수립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광주전남문화연대,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전남대문화예술특성화사업단, 광주경제정의실천운동연합 등 제 단체들이 지난 2월 6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종합계획안에 대한 시민포럼’을 개최하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이념과 방향, 내용 등이 시민적 합의에 의해 도출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간,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와 문화중심도시추진기획단이 꾸려진지 3년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추진기획단이 내놓은 종합계획안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에 대한 후속대책으로 포럼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법정종합계획안에 정식으로 반영시켜 줄 것을 문광부장관과 광주시장에게 공식 요청할 예정에 있다.
또한 광주를 ‘문화’로 잘 살 수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던 참여정부의 의지가 단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건립 사업으로 축소되고, 지역발전에 대한 시민의 의지와 기대가 지역이기주의로 왜곡되는 현실에서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종합계획안을 만들기 위해 외국에 나가 선진(?) 문화도시들을 보고 온 사람들이 써놓은 글들을 보면 광주가 문화도시가 되려면 이러저러한 건물을 세우고, 거리를 만들고, 문화상품을 팔아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보고 만나고 온 것은 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관계자들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는 시민들이 살지 않은 유령도시였나? 시민들의 바람을 어떻게 의제화하고, 능동적 참여를 이루었는가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시민들의 문화적 힘을 어떻게 구현하여 문화도시의 품격을 높였는가, 지방의 고유한 개성과 스타일을 어떻게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냈는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화선진도시가 유령도시였나
조선말의 실학자 이덕무는 중국으로 연행을 갔을 때, 남들은 옛 성인들의 묘나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는데 자신은 거리로 나와 사람들의 살아가는 실제 생활을 조사했다. 도로, 주택, 벽돌 만드는 법 등 조선 백성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 그의 심저에는 조선이 풍요롭고 튼튼해지는 것, 그 안에서 백성들의 살림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는 이야기다.
부디 문광부와 광주시, 시민사회단체들이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 거는 시민들의 요구를 가슴 뜨겁게 헤아리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