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5·18 가해자를 ‘신군부 반란 세력’으로 처음 사용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17일 배포한 자료를 통해 ‘5·18민주화운동 개요’를 서술한 대목에서 3차례에 걸쳐 ‘신군부 반란세력’이라고 광주 유혈진압 계엄군 투입 세력을 명확히 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전 언론에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관련 보도자료에서 단연 시선을 끌었던 것은 ‘5·18민주화운동 개요’를 기술한 마지막 페이지였다.
보훈처는 1980년 5월 18일 상황에 대해 “국가권력을 강점한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학생들이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신군부의 반란 세력’이 동원한 군대와 충돌, 유혈진압 시작” 이라고 기술했다. 또한 같은 해 5월 21일 상황에 대해선 “‘신군부 반란세력이 동원한’ 군대가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감행, 이후 광주 시내에서 퇴각해 광주를 외부로부터 고립시키는 작전으로 변경”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5월 27일 상황을 두고는 “신군부 반란 세력의 무력 진압 감행, 광주시민 해산”이라고 썼다.
이는 그동안 광주 유혈진압 세력에 대해 막연히 ‘계엄군’이라고 표기했던 과거와 달리. ‘신군부 반란 세력’으로 명쾌하게 정리한 것으로, 보훈처가 5·18기념식과 관련해 대외 공표한 자료에서는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또한 한 해 전인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사용된 ‘5·18민주화운동 개요’보다도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보훈처는 관계자는 이번 기념식 자료에서 ‘신군부 반란 세력’ 표현이 등장한 것과 관련해 “정부 기념식 준비 및 행사 검증 관련 위원회에 참석했던 민간 위원의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