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폐지와 아이들
학기초 학교는 정신이 없다. 특히 담임교사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자리배정, 학급임원선출, 학부모총회, 가정방문, 가정실태조사 파악 등 일년 동안 동고동락할 반 아이들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 아이들과 어떤 내용으로 살림을 꾸려갈 것인가. 한편으로는 기대와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그 중에서도 학기초 담임을 가장 긴장시키는 건 싸움이다. 늘 아이들은 새로 만난 녀석들끼리 영역싸움이나 이해부족으로 싸움질이 생긴다. 그런데 “넌 아빠도 없는 주제엽 “넌, 그럼 아빠가 둘이어서 큰소리냐.”는 가정사의 아픔이 싸움으로 이어질 때 교사로서 어찌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더 더욱 뜯어말렸는데도 씩씩거리면서 담임 앞에 달려들 땐 어른인 게 죄스럽기까지 한다.
그래서 학기초 가정실태조사서를 작성하는 일은 여간 신경 쓰인다. 최근 들어 결손가정이 급증하면서 아이들의 자존심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다.
어쩌다 가정결손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면 싸움은 사생결단의 기세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 앞에 담임은 정말로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이 아이의 아픔을 가려주고 저 아이의 으스대는 꼴을 꼬집어주어야 한다.
요즈음 학급을 운영하다보면 이혼가정의 실태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엄마가 없어 딸아이가 제 엄마노릇 하는 경우나 아빠가 없어 스스로 아빠노릇하면서 사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그 뿐인가. 소년소녀가장도 흔하디 흔하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묻혀 들여온 교실의 현실은 어른들 삶의 대리장 같다.
어쩜 모범생(?)으로 살아온 교사들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갈등의 현장일 수도 있다. 싸움질 한번 하지 않고 자란 모범생 담임은 싸움이 초기에 진압되면 다행이다. 더더욱 가정을 꾸려보지 못한 경험부족의 교사들은 머리 무거운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정실태조사서를 작성할 때 고심하게 만들던 재혼이나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 앞에서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얼마 전 호주제 관련 민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담임들이 일년 내내 마음졸이며 부담해야 할 심정을 여성단체가 덜어준 셈이다.
가정의 개념이 변했다. 가족의 개념도 변했다. 가정실태조사서에 나타난 가정이 그렇다. 남성만이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가정관, 가족관은 고전적인 버전일지 모른다. 이미 아빠가 없이 엄마가 가장인 가정의 숫자가 늘고 아이들마저도 가장이 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의 호주제는 혈통의 정체성을 따지는 바로미터처럼 여겼다. 이 호주제는 여성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심각한 문제였다. 호주제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경우로 너무 많은 상처를 만든다.
이미 조상모시기도 희미해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자식들이 건강하게 자기의식을 갖고 거꾸로 조상들을 찾을 수 있게 하는 해법이 필요하다.
호주제 폐지는 전통적인 혈연의식에서 보면 황당무개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가족개념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혼하는 가정이 비일비재한 현실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아이들 개별에서 새로 가정을 꾸리고 그 사이에 딸려가는 아이들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주제폐지는 교사들의 학급운영에 큰 시름을 덜게 해 주었다. 담임교사가 아이들의 콤플렉스를 토닥여줄 수 있는 여유를 넓혀준 것이다. 가정이 만든 갈등이든 아이들끼리 부딪혀 생긴 갈등이든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만드는 게 최선의 일이다.
40여명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40여 색깔이다. 모름지기 교사는 담임교사와 아이들과의 성격차이에서부터 아이들과 아이들의 성격차를 잘 다스리는 노련한 조율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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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땜에 아이들 가정사에 낙인을 찍는 선생님은 아니었을 것이다.
호주제가 있건 없건 폐지되건 안되건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는 선생님
해체가정의 아이들을 그런아이들로 취급하는 선생님의 시각...
이런게 정리되어야지.. 현장에서 이게 뭔, 의미가 있을까요?
안그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