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대한민국]박시훈 남도대안교육사랑방 지기
최근 이래저래 돈 들어갈 곳이 생겨 급하게 빌려야 하는 사태가 닥쳤다. 요즘처럼 모두 먹고 살기 힘든 때에 주변 누군가에게 돈 부탁을 하는 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들은 모두 알리라. 평생 단골 무시하는 은행
그래서 은행 대출을 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나처럼 일정 직장이 없는 사람은 우리나라 제1, 2금융권(은행, 증권·금융회사, 유명 캐피탈)에서는 대출받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겨우 대출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제3금융권, 즉 사채시장밖엔 없었다.(요즘 멋지게 TV 광고도 하고 큰 스포츠 이벤트도 후원하는 등 아주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어 솔깃하다.)
하지만 모두들 손을 내젓는 곳이 사채시장이 아니던가.엎친데 덮친다고 유일하게 쓰고 있는 S 카드회사에서 두 세 달 몇 만원씩 연체해 온 일 때문인지 한도액을 한마디 통보도 없이 축소해 버렸다. 무자비하다….
모두다 신용에 관한 일들이었다. 직장이 없는 나는 은행에서는 신용이 없는 사람이었고, 몇 만원, 몇천원이라도 제 날짜에 갚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부애나는' 일이다. 어렸을 때 '저축'하라는 말에 100원을 들고 은행에 출입한 이후 20년 이상 꼬박꼬박 은행을 이용했고, 얼마 안되는 카드 연체금도 요구되는 수수료까지 더해서 꼬박꼬박 그 다음 달에 지불해왔다. 난 그들에게 단골이면 단골인 셈인데….
게다가 지금 직장이 없다 뿐이지 지금까지 내가 아무 일도 안한 것도 아니고, 신체 건강하고, 얼마든지 일해서 벌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런데 신용이 없다니!!!
어쩔 수 없이 주변 친구들과 선후배에게 부탁 해보기로 하고 어렵게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떤 친구는 빌려주지 못한 것에 오히려 내게 미안해했고, 어떤 후배는 이번 달은 어렵고 다음달 적금을 넣지 않으면 되니까 다음달은 안되겠냐는 눈물나는 소리도 했다. 급하게 필요한 돈은 결국 친한 한 친구가 회사 동료에게 빌려 마련해 줬다….
우리 사회에서 신용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누가 진정으로 신용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언제부터 은행이나 카드사가 내 신용을 얘기하고 관리해왔다고…. 마치 '이젠 더 이상 쓸모 없는 놈이야'하고 버려지는 것 같아 심히 불쾌함이 든다.
진정한 신용은 사람에게서
신용은 사람의 문제이며 관계 문제이다. 컴퓨터나 전기처럼 0과 1의 문제가 아니다. 기다림 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정에 대한 배려 없이 사람을 평가하고 그 속에서 낙인찍는 신용 제일주의 경제. 이제 정말 "됐거든~"이다. 그리고 고맙다. 더 이상 신용이 뭔지도 모르는 니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게 박차를 가해줘서.
이제 남아있는 하나의 카드도 정리하려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오히려 없으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얻을 수 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이다.
그리 가진 거 없는 나에게 아낌없는 믿음을 보여주고 신용을 몸소 보여준 주변 친구들에게 나는 이제 어떤 걸 준비할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냥 지금처럼 '잘 살고 있다'하면서 살면 될라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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