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굴뚝같죠”
20대들은 말한다. 그들이 ‘봉사’에 소원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그 어떤 거창한 이유보다도 간결한 대답이다. 그렇다고 20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 섣불리 오해하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광주지역 봉사의 등불을 밝혀주고 있는 든든한 봉사단체도 여럿, 그 중 오늘은 주 구성원이 20대 후반인 광주지역 20·30대 봉사모임 ‘깍지’를 만나봤다.
다른 봉사단체도 많은데 왜 하필 ‘깍지’를 선택했냐는 유영미(32·아름다운가게 매니저) ‘깍지’ 회장 물음에 “회원은 많이 모집하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유 회장에게 온라인 회원모집 이야기를 해줬더니 호탕하게 웃어제꼈다.
유 회장의 말처럼, 광주지역에는 광주청년나눔센터, 광주푸른청년회 봉사단. 광주청년봉사 하늘정원 등 여러 단체가 활동 중이다.
‘깍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마음은 굴뚝같지만 실천봉사가 어렵다는 젊은 세대들’에게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같은 세대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나눔 실천하는 청춘 집단 ‘깍지’
2005년 말, 광주겨레사랑청년회원 몇몇이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도 일조하자”는 야심찬 결심 아래 봉사활동에 발을 내디뎠다. 전문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봉사 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깍지’였던 것.
유 회장은 “너와 내가 손깍지를 끼면 하나 되는 마음처럼 봉사를 통해 너와 내가 하나 되자는 의미로 ‘깍지’로 지었어요” 라며 ‘깍지’ 탄생 비화를 들려줬다.
‘깍지’ 온라인 회원 수는 300여명 가까이 되지만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 직접 봉사에 나서는 회원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아쉽지만 괜찮다고 했다.
일종의 의무감이나 강요에 의한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라는 것. 언젠가는 온라인 회원 모두를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듣고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봉사는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요새 젊은층 코드가 ‘나눔’이잖아요. 봉사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거죠” 유 회장의 쿨한 답변이다.
이들은 ‘신나는 봉사활동’을 실천하기 위해 4가지 실천원리를 세웠다.
△봉사로 놀자 △배워서 남주자 △자원봉사로 친구 사귀자 △자원봉사에 빠져보자.
이 실천원리를 준수하기 위해 이들은 매주 목요일 사전모임을 갖는다.
“신입회원들이 들어오면 어색하지 않게 친목도모도 하고, 놀이봉사를 위한 준비도 해야죠”
이들이 말하는 준비에는 많은 것들이 해당된다. 올해 신설한 ‘공연기획팀’이 진가를 발휘하는 시간이기도 한 사전모임은 풍선아트나 페이스페인팅, 자원봉사에 대한 이론수업, 시사토론 등 이 모든 것이 ‘배워서 남주자’ 실천을 위해 기반을 닦는 것이다.
‘깍지’에 대해 알아갈수록 ‘봉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젊은 세대 트렌드 ‘퓨전봉사’
그렇다면, 이들이 하는 ‘봉사’의 내용은 무엇일까?
‘차별 없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실천하고자 광주지역 8개 단체들과 연계, 우리지역 저소득가정·한부모·조손가정·다문화가정 등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산타가 돼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사랑의 몰래 산타 대작전’.
광주지역 가장 큰 봉사활동이라 말해도 손색없는 ‘사랑의 몰래 산타’는 해가 거듭될수록 보다 많은 산타를 배출하고 있다.
‘사랑의 몰래 산타’를 통해 ‘깍지’에 들어오는 회원들도 적지 않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엔 64명의 지적장애인들 보금자리인 광주시 광산구 덕림동 소재 ‘로렌시아’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로렌시아 시설봉사’를 진두 지휘하는 장길수 ‘로렌시아’ 봉사팀장은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주는 부정적 시선에 대해 말했다.
“다들 처음엔 장애인에 대한 편견 속에 장애시설 봉사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껴요. 그러나 막상 ‘로렌시아’ 친구들을 만나고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요. 그들은 단지 ‘장애’라는 불편함을 겪고 있을 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편견은 ‘극복’하는 것이 아닌 ‘경험’이라는 그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언제든지 마음 놓고 책 볼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이들은 ‘아름다운 가게’ 후원을 받아 ‘나눔장터’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이들 반응이 즉각적이라 즐거워요. ‘선생님’하며 잘 따라주는 것도 고맙구요” 아이들 웃음소리에 절로 흥이 난다는 이들은 3일 ‘작은 도서관 1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도 이들은 농촌 봉사활동 및 통일 쌀 경작, 수해복구 활동, 인형극·뮤지컬 공연, 따뜻한 밥상 차리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들은 얼리어답터를 표방하는 젊은 세대답게 봉사방법과 활동영역에 있어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다양한 놀이봉사를 하기 위해 공연기획팀을 신설하는가 하면, 분리돼 있던 ‘노래’와 ‘나눔’을 통합, 20·30대 트렌드에 맞춰 ‘퓨전 봉사’를 한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한다. 그 속에 ‘즐거움’을 넣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
이들은 ‘봉사’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봉사 자체가 본인들에게 주는 소소한 즐거움에 대해 논할 뿐이었다. 생활 속 일부분처럼, 봉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유연한 태도가 부러웠다.
유 회장은 로렌시아 봉사 첫 날을 기억한다.
“저만 보면 자꾸 머리를 박는 아이가 있었어요. 반복되는 행동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됐는데, 알고 봤더니 그게 장애였어요”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는 것.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봉사에 임하는 자세다.

“사람들은 봉사를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하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시간이 나면 어때요?”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봉사는 하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실천해야 가능한 것”이라며 실천봉사를 강조했다.
이들은 “봉사를 베푼다는 마음 보단 즐긴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끝내기엔 봉사를 통해 얻는 것이 많다” 이들의 공통된 말이다.
정서적 만족은 물론 인형극, 풍선아트, 페이스페인팅 작업 등을 통해 자기계발 기회와 리더십 함양, 다양한 인맥 쌓기 등 ‘하나를 주면 열을 얻는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끝으로 이들은 “세상이 변하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앞장서 세상을 바꿔보자”고 같은 세대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 후, “봉사를 통해 밝은 세상,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를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무엇이든 ‘시작’이 어렵다. 처음이라는 낯설음과 설렘을 동반한 시작은 막상 한 발 내딛고 나면 ‘시작에 의미부여한 것이 민망해질 만큼’ 모든 것이 수월해진다.
‘봉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좀처럼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궁색한 변명 속에 ‘나눔’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