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위한 취지로 창간된 잡지 ‘녹색평론’은 ‘이미지의 시대’에 걸맞지 않게 표지를 비롯해 첫 장과 마지막 장까지 사진 한 장 없이 무채색으로 발행된다. 그 무렵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칼라 TV가 색깔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고 있었다. 보는 잡지가 대세를 이루고 총천연색의 화려찬란한 비쥬얼이 도처에 숨막힐 정도로 범람했다.
그런 ‘색깔 도가니’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녹색평론’ 지가 어떻게 독자들에게 어필할 것인지, 쉽지 않은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20주년을 맞았다는 올해 녹색평론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녹색평론’은 창간 당시 사진 한 장 들어가지 않는 흑백의 잡지를 펴내는 의도를 분명히 한 바 있다. 오직 진실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선택된 문자와 그 문자를 조립하여 엮어낸 문장이 그 어떤 것으로부터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물론 단 한 장의 사진이 수천마디의 말보다도 더한 의미전달의 수단이 된다는 점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다만 이 책자는 비쥬얼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나아가 그것에 중독돼 있는 독서계로부터 독립되고 싶다는 불씨 하나를 밝혔던 것이다.
어쨌든 이 흑백 책자의 성과여부를 차치하고,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대로 오늘 우리는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각종 매체에 의해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들이 그 양이 많기도 한데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나오자 마자 곧바로 잊혀져 가는 그런 시대인 것이다.
때문에 어떤 사건이나 중요한 가치도 의미를 되새길만한 시간을 주지 않고 곧장 사라진다. 오로지 이미지의 잔상만을 남길 뿐, 모두 홍수처럼 떠밀려 갈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매체와 그것을 이용하는 주체들이 녹색평론처럼 이미지 시대를 거슬려 역류할 수가 있을까.
이 시대의 주연급 매체 TV는 거론 불가능이고 신문, 잡지도 그 대열에 낀지 오래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은 당연하다고 쳐도 선거철 정치인 역시 이미지가 중요한 득표 요인이 된다. 그들이 억대 피부관리를 받고 심지어 뱃살까지 관리하는 이유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이미지를 구축해 내기 위해서다.
그런 사례가 성공으로 이어지면서 이미지 관리는 정치인을 구성하는 요소 중 상수로 자리잡을 정도다.
그러나 이 이미지의 시대가 종식(변화)되고 있다. 근사하고 그럴싸한 이미지가 하나의 가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대중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꼭 닮은 헤어스타일로 60살 환갑 나이에 이르도록 이미지 관리만 해온 박근혜씨를 비롯해 엊그제 선거에서 떨어진 미모의 여성 후보 나경원, 그리고 생수 광고로부터 시작해 참신한 이미지로 뒤집어 씌워졌던 오세훈 이런 사람들이 대중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이미지 가면 뒤에 숨겨진 실체를 들켜버렸기 때문이리라. 대중들이 이 실체를 확인하게 된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매체 즉, 인터넷을 통해 듣는 라디오가 갑자기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후부터다. 이 새로운 매체는 가공된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콘텐츠는 목소리이며 내용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갖고 있는 진실의 여부이다.
현장을 보여주는 동영상 역시 실시간으로 즉각 전달되기 때문에 덫칠을 하거나 불편한 진실을 덜어낼 수도 없다. 결국 이미지가 창궐한지 한세기도 못돼 각성한, 그리고 집단지성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더 이상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변장한 그것들이 감추었던 진짜를 찾아나선 것이다. 때마침 개발된 신매체의 도움으로 말이다.
이제 이른바 ‘홍보’라는 이름으로 양산되고 있는 가짜, 즉 이미지 그것의 생명은 끝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