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끝자락 해남 땅 마늘밭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김을 매는 할머니들의 대화에서도 ‘명박이’와 측근들의 비리를 성토하는 내용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매체라고는 방송과 한 주에 한 번씩 배달되는 농민신문이나 지역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정도가 다일텐데 저 멀리 서울의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하는지 웬만큼 다 안다.
70대를 넘겨 80대 노인들이 흔한 농촌지역에서 마늘밭 대화를 통해 민도를 가늠한다는 짓은 별 쓸데없는 노릇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도를 측정하는데 시골의 여성노인들이 갖고 있는 의식이 이 정도라면 전라도 전체의 수준을 어림잡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총선에서 해남과 진도, 완도는 한 선거구로 묶여 있다. 이중 해남이 인구 8만여명으로 나머지 두 군에 비해 두 배 이상 인구차가 난다. 때문에 해남사람들은 완도 출신 현 국회의원을 물리칠 고향 후보 물색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육지 해남은 땅이 넓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곳으로 물산이 풍부해 해방 후 지방자치제도가 쭉 성장해 왔더라면 훌륭한 지자체의 모범이 되었을법한 지역이다.
지난 반세기 척박한 정치가 계속되었음에도 야도(野道) 중의 으뜸 야군(野郡)이었던 해남이 4년 전 총선에서 완도출신이자 무소속 국회의원을 뽑은 것도 높은 민도에서 비롯된 결과다. 당시 해남 출신이었던 민주당 M후보는 금품 살포 등 많은 불법을 저지르기도 했으나 그 이전 이미 시정잡배 수준의 정치행태를 보임으로서 고향 민심을 잃고 있었다.
18대 총선에서 ‘내 고장 출신’이라는 맹목적 지지는 더 이상 해남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정치사를 바꾼 광주의 시민의식 역시 그냥 나온게 아니다. 그런데 이런 광주에서 총선을 앞두고 광주 동구에서 선거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선거인단 모집이 과열되면서 저질러진 불법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전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동구는 박주선 현 의원과 양형일 전 의원 등 몇 명이 각축을 벌이는 선거구다. 자살한 이는 현직 의원과 동구청장과의 관계망 속에 깊숙이 얽혀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수사결과를 지켜보지 않아도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만’ 사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광주 전남 일당 독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려되던 부작용이 곪아 터졌다는 것 외에는 다른 해석이 없다.
4년 전 들어선 현 정권의 패악에 지칠대로 지쳐 극심한 스트레스로 국민들의 수명이 짧아질 지경에 이른 오늘날 광주 동구에서 난 이 자살사건은 정치 일번지 광주의 자부심을 한 순간에 깔아뭉개는 치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남 광주의 집권당인 민주통합당의 썩어 문드러진 모습과 그 악취가 MB정권보다 더 했음 더 했지 못하지 않는 성 싶다. 광주가, 전남이 MB와 다를 바 없다? 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모욕인가.
그 책임이 어디까지 미치고 어떻게 수습될른지 모를 일이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내 고향 출신이라도 더 이상 봐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유권자는 등을 돌린다. 해남에 이어 광주 동구 시민들만이 아닐 것이다. 전 국민들의 동조가 뒤따른다. 제1야당으로서는 오싹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방법은 많지 않다. 아니 어쩌면 동구는 이번에 민주통합당 공천을 철회하는 방법 밖에 다른 길이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토록 국민들이 염원하는 야권 단일화의 기수가 되어 소수진보당에 자리를 내주는 게 광주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한번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