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0년도 더 전 일이 되었다. 내 친구는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나는 며칠에 한 번씩 멀리 있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이따금 겨울의 마지막 같은 눈이 내리고 나는 그 분분한 눈 사이로 그를 찾아가곤 했다. 그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 “힘들 것 같다”고 내게 슬픈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병원 복도 저 끝 유리창으로 흰 눈이 내리는 것이 딴 세상처럼 보였다.
그 친구를 위해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 아프고 막막하게만 여겨지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친구가 십대 시절 내게 편지에 적어 보냈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면서, 제목은 ‘사우(思友)’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나는 친구를 찾아가 병실에서 이 노래를 불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크다는 음반 가게를 찾아갔다. 그러나 음반 가게 주인은 ‘사우’라는 제목의 노래가 담긴 음반은 없다고 했다. 분명히 노래 제목을 ‘사우’로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노래 제목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음반 가게에 들어오는 젊은 사람들마다 붙잡고 그 노래 첫 소절을 들려주며 제목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의 내게는 너무도 절박해서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겨우 한 여학생이 그 노래 제목은 ‘동무 생각’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동안 제목이 바뀌었던 것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이 없었으니까. 10대 시절에 부르고 잊어버린 노래였으니 딴은 그럴 만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그 CD를 친구 병실에 있는 작은 오디오에 넣고 노래를 틀었다. “이건 네가 옛날에 나한테 편지로 불러주던 노래야.” 나는 수척해진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까까머리 시절 친구가 편지에 담아 보냈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귀한 선물을 바치는 마음으로. 친구는 침대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는 노래의 중간쯤에 가서 더는 노래를 계속 부를 수가 없었다.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그만 고개를 뒤로 돌리고 손등으로 눈물을 연신 훔쳤다. 그때 친구가 내가 다 부르지 못한 노래를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우리는 모두 친구와 함께 같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친구의 병실에는 간병인과 그의 아내, 아들과 친지 몇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눈물 반 노래 반으로 동무 생각을 다 부르고 나니 병실 안은 침울하게 가라앉아버렸다. 친구는 흐느끼고 있는 우리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들, 이러는, 거야. 곧, 봄이, 올, 텐데......”
힘들게 몇 마디를 말하고 친구는 흰 눈발이 흩날리는 창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나는 ‘봄이 올 텐데...’ 하는 친구의 말에 온몸이 찌르르 했다. 청라언덕에 백합이 피고, 흰 나리꽃 향기 맡는 봄이 곧 올 것이라고 친구는 말하는 것이었다. 밖에는 눈송이들이 나비떼처럼 어지러이 내리고 있었다. 드물게 보는 폭설이었다.
친구는 눈이 내리는 날 새벽 눈을 감았다. 마치 봄을 마중하러 가듯이 이 세상을 훌쩍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그 친구 생각 때문에 가슴이 아려온다. 그래, 사람은 가도 봄은 오는 것.
만물은 쉽게 유전하는 것. 봄이 와서 온갖 꽃들을 피워대고, 부드러운 바람을 불고, 푸른 풀잎들이 돋아나고, 온통 축제를 벌이는 듯해도 나는 그 축제가 낯설기만 하다. 마음의 친구가 없는 봄, 봄은 왔건만 내게서 피어날 친구가 없는 봄. 그래도 백합은 핀다.
우리는 인생에서 몇 번이나 봄을 맞이하는 것일까. 그리고 몇 번이나 봄을 보내는 것일까. 올해도 봄은 오고 또 가겠지만 그 봄의 바닥에 꽃그늘 같은 내 슬픔이 어룽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봄이 오는 길목으로 가 찬란한 잔치를 벌일 세상 풍경을 보기 위해 옷장에서 봄옷을 꺼내 챙겨두었다. 봄을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나도 아득한 날 하늘로 간 친구를 만나듯 봄 속으로 걸어가 두 팔을 벌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