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자를 가리켜 대장부라고 말한다. 남아로 태어나 한창 젊은 나이인 이십 세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고 하겠는가라고 외쳤던 남이 장군의 시 한 편도 생각난다. 남자는 무언가 남아의 기상답게 대중이나 국가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강인한 의기가 내면 속에 숨겨져 있다. 어려운 이 거사를 같이 할 이가 몇이나 될까 만은 나야 말로 열렬한 한 사나이이니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여기에 엄연히 서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丈夫非愛死(장부비애사) / 복암 이설
대장부 죽음을 아끼지 않겠는가
스스로 죽기란 너무나 어려운데
열렬한 한 사나이가 바로 여기 있었네.
丈夫非愛死 自死最難爲
장부비애사 자사최난위
幾人同此事 烈烈一男兒
기인동차사 열열일남아
대장부 죽음인들 어찌 아끼겠는가 만은(丈夫非愛死)이란 첫구로 제목을 붙여보는 오언절구다. 작가는 의병장 복암(復菴) 이설(李偰:1850~192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대장부 죽음을 어찌 아끼지 않겠는가만 / 사람이 스스로 죽기(자결)란 아주 어려운 것이니 // 이 거사를 같이 할 이가 몇이나 될까만은 / 열렬한 한 사나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대장부 죽음을 아끼리오만]로 번역된다. 이 시문은 의병장 안병찬(安炳瓚:1854~1921)의 거사를 기리고 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법부주사로서 반대했고, 이듬해 다시 민종식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켰으나 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그뒤 그는 변호사가 되어 1909년 안중근 공판의 변호를 맡았고,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했다.√ 시인은 시적 대상자가 법부주사로 있으면서 을사늑약을 반대하고 창의 대장으로 있으면 활동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시인은 의병장이 대담한 정신력을 보고 대장부 죽음을 어찌 아끼지 않겠는가만은 사람이 스스로 죽기란 어려운 것이라고 추겨 세운다. 의병장이 자결을 한다거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은근하게 격려하고 있다.√ 안 의병장이 임시정부 법무차장이 되고, 소련 레닌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오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상을 끌어 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이만한 거사를 같이 할 이가 몇이나 될까만은 열렬한 한 사나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그런 시를 남겼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대장부 죽음 어찌 아껴 자결이란 어려우니, 거사할 이 몇이 될까 한 사나이 여기있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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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복암(復菴) 이설(李偰:1850~1906)로 조선의 의사(義士)이다. 1889년(고종 26) 부수찬에 등용, 교리·정언·응교·사복시정 등을 지냈다. 민비의 피살 사건을 한탄,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매국 5적신 처형을 상소하고 붙잡혔다 1910년 석방되었다.
【한자와 어구】
丈夫: 대장부. 非愛: 사랑하지 않는다. 아끼지 않는다. 死: 죽음. 自死: 스스로 죽는다. 最難: 가장 어려운 일이다. 爲: 하다. 여기서는 ‘몸을 바치다’. // 幾人: (많은 사람 중에서) 몇 되지 않는 사람. 同: 같이 하다. 此事: 이런 일. 여기선 ‘이 거사’를 뜻함. 烈烈: 열렬하다. 一男兒: 한 남아. 한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