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진정한 개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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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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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무현 정부의 각료발표는 지난 대선 개표방송일 밤의 당선확정의 순간만큼이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여성장관 4명 탄생이라는 전례 없는 일은 실로 가슴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감동은 단지 여성 4명이 장관이 되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장관의 결정이 그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하는 사실, 즉 한 인간의 '생물학적 성'이 무엇인가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고 순전히 능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성장관들의 임명은 구색 갖추기 식으로 각료명단의 귀퉁이에 여성들을 끼워주던 이전 정권들의 내보이기식의 인사결정이 아니다. 과거에 극소수의 여성장관이나 여성국회의원들은 남성지배의 정치판에서 분위기 맞추는 꽃과 같은 존재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더이상 구색맞추는 '꽃'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에 여성을 임명하고 보건복지부, 환경부, 여성부, 법무부에 여성들을 임명하였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여성이어서 그들을 거기에 임명한 것이 아니라, 능력이 된다면 이제는 성이 무엇인가와 상관없이 성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굳이 새로 구성된 각료들의 명단에서 성을 판별하여 여성이 몇 명이라고 숫자를 세는 것이 촌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머잖아 그런 시절이 올 것이다.

   
▲ 신임 각료들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기 위해 노무현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자료

법무부의 강금실 장관은 여성적인 이름 두 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구석에서도 여성인지 남성인지 판별하기 힘든 경력의 소유자이다. 판사시절에나 변호사 시절에나 진보적인 사고로 진보적인 세력의 편에 서서 부조리한 제도들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인물이다.

70년대 암울한 박정희 독재시절에는 민주화를 꿈꾸며 실천에 대해 고민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서슬이 시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판사로 재직하면서 집시법 위반으로 즉심에 넘겨져온 대학생들을 무더기로 석방했고, 그 이후 변호사를 하면 '민변'활동을 통해 사법부의 개혁방안을 궁리하고 진보운동을 지원해 왔던 인물이다.

권력의 자리들을 두루 섭렵하고 화려한 이력들을 보여주는 과거의 많은 장관들과는 다르다. 그래서인지 강장관의 임명에 대해 검찰 고위급 간부들의 반발도 거세었고 악의적인 각종 루머까지 나돌았다.

보수 세력의 이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개혁능력에 의해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관철시킨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검찰은 '국민의 검찰'이 아니라 역대정권들의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개혁이 논의되어왔지만 그것이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은 검찰조직의 굳어진 권력생리 때문이었다.

개혁은 진보적인 사고와 변혁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지 부패한 자신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자신을 치료할 수 없고 의사의 힘이 있어야 치료가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수십년 간 정권안보를 위해 일해 온 검찰이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마치 썩은 나무에 좋은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리도 과거와 같이 주변적인 영역이 아니다. 갈수록 사회문제가 심각해지고 복지에 대한 권리가 국민의 사회적인 권리로 공고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 역할은 중차대하다. 환경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고도성장의 시대에는 경제, 산업관련부처만을 중요시했지만 이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환경부의 역할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시되고 있다. 여성부의 역할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성부의 장관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양성평등적 사고 위에서 여성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어느 시대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 속의 개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가 진보해가고 있다는 생각과 개혁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산다. 때로는 뒷걸음치고 지척거릴 때도 있지만 크게 보면 전진해가는 것이 사회변동의 생리이다.

진보적 시민들 든든한 뒷받침돼야

그런데 개혁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개혁이 진행되어갈수록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거세어지고 개혁세력에 압박을 가하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은 쓰러져갈 때 더욱 강해진다. 심지어는 혁명정부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변혁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부패하는 경우가 많다.

현정부의 개혁의지를 실현할 수 있게 하고 부패를 막는 길은 진보적인 시민들이 확고한 개혁지를 보여준 현정권을 기득권 세력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주는 것이며, 개혁의 추진과정을 눈을 떼지 않고 감시하는 방법 밖에 없다. 현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뒷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첫 마음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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