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는 동향의식이나 향토애, 지역적 유대감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로 달려가면서, 도시가 확대되고, 교통통신 수단이 급격히 발전하게 됨에 따라 지역의 이러한 독자적 문화는 이제 그 생명력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
고급문화든 대중문화든 모든 문화예술은 이제 서울로 상징되는 중앙의 지배력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의 매스미디어와 정보통신수단의 혁명적 발전에 의해 중앙집권적, 서구중심적 문화가 지역문화를 점령해버렸다. 대중문화의 경우는 중앙에의 종속성이 더욱 극심한 상황이고, 고급문화나 예술의 경우에는 문화수용자의 수준이 향상함에 따라 세계적 수준의 문화예술이 점령해버린 상태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지역문화'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도 의문이며, 또한 '지역문화'가 과연 어떤 정체성과 독자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도 몹시 어려운 문제이다. 게다가 과거 문화의 답습만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접근하자면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지역문화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앙문화와의 지배-종속 관계를 유지하는 길, 중앙문화의 선택적 수용이나 변용을 통해 지역문화의 활로를 모색하는 길, 중앙문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지역문화의 독자성을 수립하는 길이라는 세 갈래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접근하는 자세는 '지방시대'라는 개념을 소극적으로 수용하여 현실적인 중앙문화와 지방문화의 격차를 줄여감으로써 평균적 수준의 확보와 유지를 통한 문화의 균점(均霑)을 도모하는 방식과 '지방시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특색있는 문화를 개발하여 문화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지역문화를 형성하는 주체들이 어떻게 구축되고 어떤 방향을 설정하는가가 결국 중요한 문제가 되는 셈이다. 또 한가지 고민할 문제는 대중문화의 중앙집중화 현상과 상업주의 현상을 극복하여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향후 지역문화를 이끌어갈 미래 세대인 청소년층이 현재 어느 지역에서나 중앙집권적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을 형성하면서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문화'가 중심적 화두로 대두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는 문광부에서 2001년을 '지역문화의 해'로 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지역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의 문화전통을 새롭게 조명하여 재창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며, 지역주민들의 문화향수권을 신장하기 위한 취지로 선정되었다.
특히 이를 계기로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문화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이 전국적인 소통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다양한 경험들을 교환하고, 독자적 프로그램의 창의성을 학습하기도 하는 '자발적 연대'가 시도되었다. 중앙중심적이거나 지역의 노년층 중심의 문화구조에서 벗어나는 계기이기도 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이제는 '지역문화네트워크'를 발족하기까지 이르렀다. '문화'의 시대이자 '지방'의 시대라는 점에서도 지역문화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지방자치가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대다수의 자치체가 '문화(행정)'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문화행정과 지역발전'이라는 슬로건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이러저러한 문화정책을 실시하거나 표방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화'는 식상한 단어가 되어버리기도 했고, 심지어 '문화'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비문화적 사고나 반문화적인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기조차 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전통문화가 유지되고 생명력을 갖기란 극히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지역의 독자성, 정체성이 갖추어진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기도 극히 어려운 일이다. 정보통신이 발달할수록, 세계가 하나가 될수록 '자아'와 '지역'이 중요하다. 세계와 만나는 주체로서의 '지역', 그 지역의 자존과 자기 확인을 위해서는 문화정체성의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역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지역에 근거한 문화운동이 중요하고 더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지역문화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존재하게 된다. 차이와 개성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고민과 활동의 경험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 대표, 조선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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