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김진균 교수를 추모하며
[투데이오늘]김진균 교수를 추모하며
  • 최정기
  • 승인 200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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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기[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선거철만 되면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199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보다는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주장하면서 지지를 호소했었다.

1990년대에는 그 내용이 지역감정이나 경제 발전 등으로 조금 바뀌었지만,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서 살겠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의 주장은 그 전과 똑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주장의 진실 여부야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이들 정치인들의 언설이 자기중심적이며, 거기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낯선 가치에 대한 인정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반대하는 것들에 대한 섬뜩한 증오심마저 읽을 수 있다. 이것 역시 권위주의가 낳은 또 다른 동일시일 것이다.

넓디 넓은 그의 품과 가슴

2004년 2월 14일 오전 김진균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필자의 지도교수의 스승이다.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사조(師祖)가 된다. 항상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그의 모습 중 필자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가 제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아무리 어린 학생일지라도 항상 상대를 존중하였으며, 학생이 자신에게는 낯선 가치나 수용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일지라도 진지하게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그의 모습은 바람직한 선생의 길은 무엇이고, 진정으로 열려있는 자세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 망월동에서(오른쪽 두번째가 김진균 교수)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필자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의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문자 그대로 격동의 시절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그가 살아왔던 역정이나 삶의 자세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는 항상 시대의 모순을 피하지 않고 그것에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살아왔지만, 동시에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넓은 가슴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동안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사회운동의 최전선을 지키고 살아왔으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진정으로 수용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다양한 가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몇 안 되는 어른이었다.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의 제목이 ‘너른 마당’이라지만, 실상 그의 삶과 이력만큼 그의 품과 가슴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선생님의 삶과 자세는 극한 대립과 부정적인 투쟁이 주를 이루던 권위주의시대보다는 열린 사회를 형성해가야 할 오늘날 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백기완선생의 조시는 그래서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지금 우리들의 눈엔
절망도 아니 보입니다.
모두가 제 울타리만 넓히려고 꽝꽝
마치 가문 웅덩이의 피라미들처럼
서로 물어뜯고 서로 할퀴는 이 막판에
가슴까지 활짝 열어
모두를 내놓으시더니
뭐이가 그리 바빠 먼저 가시나이까


'열린 사회'위한 큰 힘으로

포퍼(K. Popper)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20세기 초 나치스나 파시즘의 경험에 근거하여 전체주의적인 요소들이 열린 사회의 장애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렌트(H. Arendt)는 옳고 그름을 사고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활동이 전체주의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의 상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만이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김진균교수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러한 가르침을 넘어선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개개인의 열린 자세와 자발적인 행동은 물론이고, 낯설고 심지어 적대적이기조차 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긍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열린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선생님! 영면하소서!

/최정기(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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