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필자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고 있다. 이른바 ‘보수원조’라는
한나라당에서 개혁을 이야기하고, 자칭 ‘개혁적’이라는 열린 우리당에서는 현재의 질서를 공고히 하려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건설업체의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하고, 열린 우리당은 선거공약을 저버린다는 비난을 감내하면서까지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사전 보도도 전혀 없는
중수부 폐지론에 검찰총장은 '목을 자른다'는 극한 표현까지 써가며 반발하고, 그러한 검찰총장을 법무부장관도 아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그런가하면 김근태의원은 대통령에게 분양원가 공개문제와 관련하여 '계급장 떼고 붙자'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정부수립후
1980년대에 이르도록 권위주의국가와 제왕적 통치자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러한 풍경은 그렇게 익숙한 것이 아니다. 세상은 변한 것인가? 변했다면
무엇이 변했는가?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1980년 이후 우리 사회는 문자 그대로 '격변의 시기'라고 한다. 그러한 변화를 주도한 것은 한편으로는
컴퓨터를 위시한 과학문명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광주민중항쟁 이후 대중적으로 폭발한 사회운동이었다. 하나는 인류의 문명사를 강타한 충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현대사를 강타한 충격이었지만, 그 두 개의 충격이 삶의 조건을 바꿔버렸다. 그 결과 현재의 우리 모습은2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는 컴퓨터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며, 가히 ‘정보혁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가 되었다. 농경문화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삶의 지혜를 갖고 있는 어른들이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그러한 변화에 민감한 아이들에게 보다 큰 힘이 주어진다.
핸드 폰으로
게임을 하는 아이들과 문자메시지도 보내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우리의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런 광경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주된 담론이었던, ‘어른들은 항상 능숙하다’는 믿음을 깨트리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위계제도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를 강타한 코드는 민주화였다.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을 위시한
이른바 ‘민중’들이 사회운동에 전면에 등장하면서 비단 정치체계 뿐만 아니라 체제 전반에 걸쳐서 문제를 제기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으며, 사회적 민주화도 진행되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권위를 가졌던 것들, 혹은
금기시되었던 것들이 무너지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의 등장은, 다른 요인도 많겠지만, 어찌보면
이러한 변화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노무현대통령의 등장은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서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후보가 될 때까지는 거의 필마단기였다. 사회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한 연줄망도 없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반권위주의적인 흐름과 정보혁명 이후 형성된 인터넷 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기존의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대통령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도 대통령 잘못,
심지어 수해가 들어도 대통령 잘못이라고 한다.
또 우리 국민들은 어리숙한 대통령을 용서하지 않는다. 과거의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대통령은 더더욱 용서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할 말을 하고 있으면 안된다. 그보다는 이라크파병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겨볼 때일 것이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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