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기름값·비료값·사료값에 그 어느 때보다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시농민회가 최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900평의 쌀농사를 짓는데 작년 대비 18만원 가량 더 든다고 한다. 비료값·작업비 상승 탓이다. 이는 80kg 쌀 한가마니 값에 해당된다.
그나마 정부와 농협 등이 약속한 비료값 보조 70%도 올해로 끊기고, 올 연말 비료값 40%가 추가 인상될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사료값도 2006년부터 꾸준히 30~40%씩 올라 축산 농가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또 국제원유가 상승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도 버거운 마당에 지난해 개정된 법령은 이달부터 농협이 농민들에게 면세유 취급수수료와 카드수수료까지 징수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농협중앙회는 겉으로는 “각 지역농협의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이지만, 수수료 징수를 내심 반기고 있는 실정이다. 힘 안들이고 앉아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게 법령에 명시돼 있는데 애써 포기할 만큼 농협은 그동안 순진(?)하게 처신하지 않았다.
“정부·농협에 희망 거둔지 오래”
정책적으로 농업을 포기한 정부, 농민을 상대로 잇속을 챙기는 농협에게서 더 이상 농민들은 희망이란 단어를 찾으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농민들은 농촌과 농업을 버리고 도시를 향해 짐을 싸고 있는가? 아니다. 농민들은 생존권을 주장하며 농민회를 중심으로 농기계 반납 투쟁을 벌이는 등 서서히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계 상황까지 내몰린 농민들의 불만이 언제 그 강력한 파열음을 낼지 모르는 상황이다.
희망없는 농촌에 한줄기 단비같은 곳이 바로 ‘농민주유소’다. 농민주유소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농협의 면세유 독점 공급 체계에 맞서 의미있는 경쟁을 유도하며, 나아가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보탬도 되고 있어서다.
‘우리 지역 면세유는 왜 다른 지역보다 비싼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농민주유소는 농민들이 출자하여 만든 법인이 벌이는 사업 중 하나다.
전국 16곳에 있는 ‘우리영농조합법인’은 ‘전국농민회총연맹 경제협동사업위원회’에 속해있다.
농민주유소 사업 외에도 각 지역의 실정에 맞게 농산물 유통, 농자재 및 농약판매, 퇴비공장 운영도 하고 있다. 우리지역에는 나주, 보성, 담양에 법인이 있고, 각각 농민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지역 면세유는 왜 비싸지?”
우리영농법인의 첫 테이프는 1994년 6월 진주에서 끊었다. 농민들이 농사짓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기름·퇴비·농약 등의 가격 기준점을 제시하는 것이 초기 설립목적.
이후 주유소·농약·퇴비사업을 벌이면서 농민들에게 값싼 기름을 제공하고, 제대로 된 퇴비를 공급했다. 그러자 지역 농민들에게 진주법인은 영농정보를 공유하는 교류의 장으로, 전국의 농민들에게는 농업의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전국 각지에 법인이 생겼고, 2006년 변산반도에 부안법인이 설립한 농민주유소가 16번째로 가장 최근이다.
우리지역은 1999년 9월 나주법인을 시작으로, 2001년 1월 담양법인, 같은 해 9월 보성법인이 차례로 주유소 사업에 뛰어 들었다.
보성농민주유소(보성군 벌교읍 소재)에서 만난 전국농민회총연맹 경제협동사업위원회 김수연 집행위원장은 “농민주유소가 인근 농협주유소의 면세유 가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김집행위원장은 보성법인에 초기부터 참여한 창립멤버로 현재 전국 각지를 돌며 경제협동사업의 애로점을 청취하고, 도움을 주며,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 2001년 보성농민회 집행부와 각 지회장 16명이 각각 1천만원씩 출자하여 설립한 보성법인(대표이사 김연식)은 2008년 현재 자산규모 9억원·임직원수 16명·조합원수 103명으로 확대되고, 영농자재 부문까지 사업을 넓혔다.
소속된 조합원들에게 이용고배당과 출자배당까지 지급할 수준까지 이르렀다.
농민주유소는 농민들에게 그간 표면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농협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면세유류 취급업무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은 농협이 그간 농민들을 상대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사실이 농민주유소를 실제 운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김집행위원장은 “면세유 제도는 정부가 농업말살정책으로 일관해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히자 반대급부로 지급하기 시작했다”며 “원래 취지로 볼 때 면세유류 취급 관리비는 정부가 부담해야 할 몫인데, 업무를 위탁받은 농협이 이제 농민들로부터 수수료까지 떼가려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넉넉한 정도는 아니지만 면세유 관련 수수료를 챙기지 않아도 수익을 내는 주유소를 보며 그간 농협이 징수해간 면세유 관련 수수료의 부당함은 명백해 진 것이다.
현재 농민주유소가 있는 인근지역 농협 임직원들은 때론 암암리에, 또 공공연하게 “같이 이익을 나누자”는 추파를 던지고 있는 실정. 면세유를 많이, 비싸게 판매하는 사람이 농협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공공연한 현실은 이런 사태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는 영농법인들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간 농촌에서 농협이 독점해왔던 사업들로 속속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면세유 사업에서 농협을 의미있게 견제한 것을 토대로 보성법인은 이제 순환농업에 입각한 유기농 분야로 사업을 넓히려 하고 있다.
‘항생제 먹인 소→배설물→퇴비→농작물’의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유기농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지역에서 축산용 청보리를 대량 재배하는 사업을 계획 중이다. 이를 통해 점차 축산까지 사업의 범위를 넓힐 요량이다.
순환농업으로 유기농 완성
“유전자변형식물(GMO)이 아닌 국내 사료를 가지고, 농가를 참여시켜 소를 키워 유통시키고, 그 소에서 나오는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순환농업으로 유기농 시스템을 완성 하겠다”는 것이 김집행위원장이 밝힌 보성법인의 포부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가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고.
각 지역 주유소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지역 감사를 도우며, 우리영농법인의 실무자들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는 김집행위원장은 바쁜 중에도 나주·담양의 영농법인들과의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구체화까지는 아직 시일이 필요하지만 못자리에 쓰이는 ‘상토사업’을 같이 하기로 하는 등 공동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3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피폐한 농촌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김집행위원장은 “이제 스스로 가야하고, 공동체로 갈 수 밖에 없다”며 “마을 단위 공동체가 농촌의 기반이 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는 힘을 길러 유통부문까지 진출해 농민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꼭 만들어보고 싶어했다. “공동체는 영리가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그 앞에는 태백산맥의 주무대가 된 벌교 중도벌판이 넓은 품으로 미래를 받아안고 있었다.
순환유기농 꿈꾸는 보성 우리영농조합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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