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과 나눔’ 실천하는 노인복지로 출발
‘복지시설 없는 복지’로 생활공동체 추구
‘복지시설 없는 복지’로 생활공동체 추구
‘여민동락’(與民同樂)과 ‘동락’(同樂)의 이름표가 붙은 두 건물은 150여 평 남짓 부지에서 하얗고 아담하게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장단을 맞추듯 건물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민요도 흥겨웠다.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다’라는 여민동락의 의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락에 취해서일까. 여느 복지시설들이 주는 무거움 보다는 ‘즐겁고 밝음’이 첫인상으로 남았다.
‘공경과 나눔-농촌복지공동체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영광군 묘량면 영양리 소재)의 두 건물 중 여민동락은 노인복지센터로, 동락은 면민들에게 무료찻집으로 개방된 지도 벌써 3달 째. 영광군 11개 읍·면에서 가장 가난하고 후미진 곳에 자리한 여민동락은 젊은 세 부부가 복지를 매개로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터전이다.
7월초 문을 열고, 지난달 2일에 개원식을 치른 이곳 세 젊은이의 면면은 낯설지가 않다. 제5기 한총련의장을 지낸 강위원 원장(38), 그와 함께 전남대 총학생회 간부를 지냈던 권혁범 지역복지팀장(35), 2002년 한신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영훈 사무국장(32)은 ‘한총련 세대’로 불리는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다. 강원장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세상을 향해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것이다.
농촌에서 밥 지어 먹고, 시골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지역민과 함께 농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살리는 지역일체형 공동체를 목표로 세 사람과 그 아내들은 뜻을 모았다. 국가보조 없이 사재를 털어 건물을 지었고, 빠듯하지만 지역과 지인들의 후원을 받아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다. 면의 110여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주간보호, 물리치료, 급식, 목욕, 차량운행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노인복지는 새로운 농촌공동체를 위한 첫걸음이다.
교사의 꿈을 접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작년 2월말에 아내와 함께 내려온 권팀장은 “2005년 강원장의 복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에 공감대를 형성해 지금 일에 뛰어들었는데, 교사의 길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어릴 적 추수가 끝나고 방아를 찧으면 몇 봉지의 쌀을 싸서 쥐어주며, 동네 가난한 집에 놓아주고 오라”고 말하던 어머니가 자신의 복지 모태라고 말하는 강원장. 대학당시에도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봉사하고, 투쟁하는 운동권으로 유명했다. 96년 전남대 국문과 학생회장으로서 성취한 이런 대중적 성과는 이듬해 전남대 총학생회장 및 한총련의장이 되게 하는 발판이 됐다.
한총련의장으로 활동한 97년 강원장은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이후 4년 2개월 동안의 옥고를 치렀다. 바로 이 시기가 현재 펼치고 있는 복지 마인드를 가다듬은 시기였다. 다가올 10~20년 후 미래를 위해 냉철하게 공부하고 고민한 결과는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출소 후 대구에 있는 효경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3년 반 동안 전문성을 길렀다.
전문성을 기르면서도 국가보조에 기대지 않으려는 ‘자조하는 복지’의 생각이 자리 잡은 것도 바로 이때다. “보조를 받게 되면 복지시설은 관청의 하부시설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고, 수급자 위주의 시설이 될 수밖에 없다”며 “파트너십에 입각하여 관청에서 의뢰하지 않는 이상 보조는 받지 않을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렵지만 원칙을 지키는 소신은 현재 관 주도로 이뤄지는 복지가 결코 대안이 아니라는 항변인 셈이다.
강원장은 이제 갓 출발한 센터를 위해 대외적으로도 무척 바쁘다. 지역민과 노인들에게 더 많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인맥과 힘을 총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단계 더 나아간 공동체를 위해서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1C는 농촌은 인구가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대규모로 유입되거나, 농촌기반의 삶이 각광받는 세기가 될 것이다”고 확신하는 강원장은 “미래의 블루오션인 농촌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이것들이 전국적 네트워크를 이루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농촌에서 복지를 매개로 지역의 문화와 생활을 담으면서도, 전국적·보편적 가치를 모색하는 여민동락 사람들이 지역민과 더불어 의식과 문화를 바꾸고 행복해지는 ‘더불어 함께 즐기는’ 공동체로 튼튼하게 발돋움하길 기원해 본다.
강위원(여민동락노인복지센터 원장)
농촌과 농업이 휘발된 농촌복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런 차원에서, 농촌과 농업의 부흥과 복원을 위한 지혜의 종합이 결여된 농촌복지는 시한부 처방일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농촌복지에 대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농촌복지가 고사에 직면한 농촌의 오늘을 연장하는 단순 수혈차원에서 벗어나 21세기 농업부흥과 농촌공동체 건설을 위한 디자이너가 돼야한다는 얘기다. 새삼스럽지만, 식량안보나 농업의 다원적 기능 차원의 중요성에서 더 나아가 ‘농업은 자연 생태계와 교감하면서 생명을 기르는 노하우를 축적해온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산업’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누군가 20세기가 화학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라 했다. 이런 점에서 농업은 앞으로 생명을 기르는 산업으로서 가장 선도적인 산업이 될 것이다. 세계 여러 석학들은 ‘인류 문명사의 전환은 농업의 공업화가 아니라 공업의 농업화로 방향을 잡아갈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결국 농업을 경시하는 나라는 21세기 경쟁 구도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분명 농업과 농촌은 미래가치를 가장 풍부하게 간직한 21세기 블루오션인 것이다. 농촌복지실천도 이런 관점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농촌복지가 제도적 복지 안에 갇힌 폐쇄적 복지에서 벗어나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지역복지운동으로 확대돼야 한다. 농업과 농촌의 21세기적 가치를 지향하는 비정부 비영리 기구를 조직하고 그들과 광범하게 연대하는데 방향을 맞춰야 한다. 농촌복지가 새로운 농민운동, 지역운동, 주민자치운동의 영역과 융합돼야 진정한 복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현재 농촌과 농민 그리고 농업에 있어서 최고의 복지는 지속가능한 국민농업의 성장으로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농민은 ‘국민 모두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며, 거꾸로 국민은 농민의 생존을 보장하는 관계가 형성’될 때 우리 농업은 강력한 자생력을 갖추게 된다. 안전한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 농업의 다원적 기능 유지, 농민의 생존권 보장 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일궈지는 우리 농업밖에 없다. 농촌복지는 이러한 큰 기획과 방향을 뒷받침하는 전제 위에서만 본질적으로 그 가치가 명확하다 할 것이다. 또한 읍면 단위에서 보다 더 들어가 작은 마을생활공동체와 밀착해 교육과 문화 나아가 생산과 유통을 함께 고민하는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가령 지금까지의 농촌복지는 질병과 고독에 시달리는 노인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 지원 위주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복지기관의 단순 서비스 공급형 복지에서 소규모의 지역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복지수요를 해결해가는 지역일체형 자립적 생활공동체로 발전시켜가야 한다. 이는 복지의 대상과 주체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복지기관과 지역이 일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사회민주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20세기 복지국가의 핵심은 국가주도형 사회복지모델이었다. 그러나 사회발전에 따라 나날이 증가하고 다양해지는 복지수요를 국가재정을 통해 일괄적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희망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복지의 시장화를 통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대안일 수는 없다. 이는 사회적 양극화만을 증폭시켜 삶의 질을 추락시키는 시장실패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 중심 복지모델은 ‘지역자립에 따른 해결을 강조하며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공동체적 인간관계 회복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중시’한다. 국가의 보조에만 전적으로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농촌복지는 소규모의 지역조직을 인큐베이팅하고 네트워크하는 지역운동을 통해 새로운 복지모델을 구축하는데 그 힘이 집중돼야 한다. 이제 농촌복지는 단순히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안의 복지’가 아니다. 모든 사회복지가 그러해야 하듯 농촌복지는 곧 농촌공동체운동이자 농민운동이며 유력한 지역정치활동이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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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갑네요.여기서 뵈오니..
강선씨 여전에 놀러좀 오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