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많은 이미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파트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근현대사의 상징으로 대변될 수 있는 존재다.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 주거문화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 가운데 하나이다. 아파트가 주는 이미지는 똑 같은 형태의 반복이 무수히 이루어져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마치 정보화 시대의 디지털 화된 인간의 익명성을 보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도시인의 삶은 인공물로 뒤덮인 기능화된 환경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디지털화된 객체로 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는데 생활방식의 획일성, 자연으로부터의 고립감, 거주자 개인의 정체성 부재 등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스카이라인과 지하 깊은 곳까지 개별적 공간은 사라지고 , 공공공간이 지배되는 시대다.
디지털화된 인간의 익명성
나는 아파트라는 공간이 보여주는 획일화된 모습에서 어떤 기계적이고 디지털적인 삶의 공간, 생활패턴과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스’에서 채플린이 공장의 기계 톱니바퀴에서 헤매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 무미건조하고 반 생태적인 주거문화인 아파트가 한국의 지배적인 주거 형태가 된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인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한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그녀가 프랑스에 가서 한국의 항공사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 친구가 그 사진속의 반포아파트 단지를 보고 “이거 무슨 병영막사나 전쟁할 때 필요한 방어벽 같은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반복적이고 너무나도 똑같은 패턴에서 군대의 질서정연함을 느꼈음은 어쩌면 당연한 사고일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재개발 지구나 넓은 택지개발지역에서는 어김없이 아파트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이 공사와 함께 화려한 모델하우스와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광고에는 마치 거기에 살면 귀족이 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현란한 모습과 광고문구로 우리를 유혹한다.
“어느 아파트에 몇 평에 사느냐”가 나의 존재감을 말해준다. 안전에 대한 보장을 대가로 곳곳의 CCTV쯤은 쿨하게 인정하는 배포 큰 우리에게 아파트는 물질인 동시에 정신인 것이다.
아파트 평수가 사람 보는 잣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슬로건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계속 진행 중이며 아울러 그 때부터 시작된 아파트 건설 붐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건설 초기에는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함이었으나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하고 성장주의로 달려온 한국의 정서상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파트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값은 수억대를 호가한다. 어지간한 고소득자나 봉급생활자가 아파트 구입자금을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데도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사를 구제해주며 서민에게는 희생을 강요한다.
주거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탄생의 초기에 동굴에서 주거생활을 했던 조상들에게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나마 넘쳐나는 아파트는 많은데 정작 집이 없어서 애를 태우는 사람이 많은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성경훈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제작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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