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열심히 ‘삽’에다 금칠을 해대고 있다. 삽에 금칠을 해대니 분명 이목은 끌 것이다. 아니 번쩍번쩍 빛나는 금칠 삽에 사람들은 이미 현혹되고 있다. 4년 동안 50조원을 투입해 9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회복하겠다고 하니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금칠한 삽으로 4대 강의 바닥을 판다고 한다. 아니 삽질이 아닌 ‘4대 강 살리기’라는 고운(?) 말로 포장한다. ‘4대 강 살리기’라는 말로는 삽이라는 본질을 가릴 수 없어서인가? ‘녹색교통망 구축’, ‘그린카 보급 확대 및 신재생에너지 보급’, ‘그린홈, 그린스쿨’, ‘Eco-Rive조성, 녹색생활공간 조성’ 등의 들러리들을 내세워 가려보려 한다.
이렇게 금칠한 삽으로 파는 삽질의 이름은 ‘녹색뉴딜’이다. 그럴싸하다. ‘녹색’이라는 현시대의 요구와 ‘뉴딜’이라는 과거 미국의 대공황시기 나름 성공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삽질의 경제의 대표적인 사례의 그럴싸한 결합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얼마나 ‘녹색’이며, 얼마나 ‘뉴(NEW)’ 한지에 대해서는 찬찬히 들여다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삽질’이 대부분인 녹색뉴딜
뉴딜정책은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루즈벨트가 7년여에 걸쳐 추진한 경기부양책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스퀘어딜(Square Deal:공평한 분배정책)과 윌슨대통령의 뉴프리덤(New Freedom:새로운 자유정책)의 합성어로 테네시강 유역의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바와 달리 뉴딜정책은 삽질로 대변되는 단순 토목사업이 아닌 극단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 자본주의에 수정을 가하고, 은행과 금융개혁, 균형예산정책, 농업지원, 금주법 폐지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를 포함한 강력한 개혁정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MB에게 필요한 것은 조·중·동스러운(?) 뉴딜의 해석이다. 테네시강 유역의 ‘삽질’을 부각해 성공모델로 삼고 ‘녹색뉴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끼워 맞추며, 삽질을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녹색뉴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삽질이 대부분이다. 전체예산 50조원의 60%가 넘는 30조원이상이 건설이 주가 되는 항목에 배정되어 있으며, 일자리 창출 또한 약 96%가 건설 및 단순생산 부문으로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아닌 2~4년짜리의 불완전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의 난국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분명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녹색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큰 삽질은 경제회생이라는 당위(當爲)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당위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대규모의 국책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의사전달은 역시나 촛불정국 때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를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말만 바꾸는 언어유희의 과정을 통해 대운하 추진 시 “국민들의 의견을 묻겠다”던 그날의 약속은 온데간데 없이 혹여 논의에 불이라도 붙을세라 지난해 12월 29일 영산강과 낙동강에서 화려한 축포를 쏘아 올리며 바삐도 착공식을 거행했다.
녹색 대안 없는 미봉책 불과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시행하는 사전환경성 검토와 같은 사전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착공식 먼저하고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하는 해프닝마저 벌어지고 있다.
국무총리와 관계부처 장관, 지자체장 등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축포를 쏘아가며 요란하게 착공식을 할 때는 언제고 개점휴업상태로 사전환경성 검토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착공식에 참석했던 한승수 국무총리는 이런 사실을 알고 참석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자잘하게 사업을 쪼개는 꼼수로 각종 법규들을 피해가는 대목에서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500억원 이상 공사의 경우 환경영향평가와 예비타당성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수고를 덜고자 500억 이하 규모로 자잘하게 쪼개는 능숙한(?) 업무처리 능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녹색뉴딜을 ‘도랑치고 가재잡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라고 말한다. 과연 도랑치고 가재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기부양과 일자리창출이라는 미봉책으로 입안한 정책이 과연 얼마나 녹색을 담고 있는지 또한 미지수다.
지금 열심히 금칠한 삽이 땅을 파다보면 분명 군데군데 금칠이 벗겨지고 검은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그 금칠이 벗겨지기고 속내를 드러낼 때는 이미 늦는다. 금칠이 벗겨지기 전에 땅을 파헤치기 전에 ‘금칠한 삽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골재로 팔아치워질 강바닥에서 과연 도랑치고 가재잡기가 가능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