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살아가면서 인생의 극적인 사건을 접하게 된다. 나에게도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린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9년 11월 4일, 이철규라는 대학생의 장례식이 있던 날이다.
나는 당시 군대를 마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평범하고 숫기없는 복학생이었다. 운명의 그날 나는 양영학원 앞을 지나가다 장례행렬을 보는 순간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겨울 내내 “그는 왜 죽었을까?”라는 화두를 안고 씨름하다 도서관보다는 최루탄이 쏟아지는 거리를 서성이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가 바로 청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그가 떠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강산은 두 번이나 변했고 세상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의 눈과 팔목에 선명하게 찍혀있던 고문과 금남로에 가득했던 최루탄이 사라진 자리에 민주주의라는 꽃이 피고 6·15열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통일시대를 개막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안감 확산
그러나 2009년 2월 14일 오늘 우리는 무엇을 직감하고 있는가?
서울 한복판에서 무리한 경찰진압으로 시민이 불에 타죽고, 악명 높은 백골단이 부활하였으며, 머지않아 거리에는 최루탄이 쏟아질 거라는 경고장에서 우리는 20년 전 거리를 떠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불현듯 청년 이철규의 얼굴이 보이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뒷걸음질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신화 마법’에 홀려있던 사람들은 민주주의 꽃이 백골단에 짓밟히고 6·15통일열차가 궤도에서 벗어나 군사적인 충돌로 치닫고 있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설마 “공든탑이 무너지랴”던 우려가 “공든탑도 무너진다”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는 통일부 폐지를 주장한 인물을 장관에 내정하면서 자존심과 기 싸움이 되고 있다. 이에 맞서 북측은 북측대로 부시정부의 적대정책을 힘으로 변화시킨 경험을 되살려 남측을 정치외교, 군사적으로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군대가 전면에 직접 나서 ‘대남 전면대결태세에 진입할 것이며 서해 군사충돌이 전면전쟁으로 변할 위험성에 대하여 거듭 경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준비로 남측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결단과 행동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정부 취임 1주년인 25일을 전후로 하여 개성공단 전면철수가 진행될 수 있으며, 3월 한미합동 군사훈련 시기에 북측은 준전시상태에 들어가는 일촉즉발의 초긴장이 예견되고 있다. 한반도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공든 탑 지킬 이는 국민 뿐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탑이 무너지면 안 된다. 6·15통일탑이 무너지면 안 된다. 무너지고 있는 공든 탑을 일으켜 세울 이는 오직 국민뿐이다. 민주와 통일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자각하고 의지를 북돋으며 힘을 모아야 한다.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세는 날이 갈수록 민주통일진영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MB호는 선장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으며, 힘을 모아 노를 저어야 할 한나라당은 친박, 친이, 소장파로 분열되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통일정책 변화를 강제해낼 북미관계 정상화와 입체적이고 강도 높은 북측의 대남압박 그리고 반(反)MB대중투쟁이라는 삼각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삼각파도는 큰 배도 침몰시킬 수 있어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다. 그런 파도가 해저에서 소리없이 MB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걸린 운명의 여름이 가고 코스모스가 필 때 이철규라는 청년 앞에 ‘역사는 국민의 힘으로 발전한다’는 진리를 선물하고 싶다.
이신 (통일사회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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