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명등룡
  • 승인 2009.02.2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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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등룡 (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계절의 변화는 양력보다는 음력을 통해 실감한다. 예년에 비해 설날을 넘긴 이후의 날씨는 완연한 봄이다. 봄은 봄인데 봄 같지가 않다. 오히려 더욱더 아득하고 캄캄한 겨울날의 긴긴 밤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어제는 몇 년 전 하남공단에서 함께 일했던 동생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를 받았다.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올해부터 시급이 4,000원으로 올라 야간근무까지 하면 처음으로 백만원을 조금 넘길 거라 생각했는데 원청에서 하청단가를 낮추는 바람에 상여금을 400%에서 250%로 낮춘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고, 그나마 일감이 없어 무급으로 쉬는 날이 늘어서 더 이상 지금의 회사를 다니기 힘들다고 한다.
  
졸속 노·사·민·정 후폭풍 어디까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며칠 전 신문을 떠들썩하게 했던 노·사·민·정 합의문이 생각났다.  경제가 어려우니 노사가 양보하고 협력해서 상생한다는 그 합의문이 발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합의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내용이 하도 어이가 없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이렇게 초고속으로 가장 밑바닥 현장까지 그 영향이 미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일까? 지금 국민들이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계절은 이미 뼈가 시리고 살이 떨어져 나가는 깊고 깊은 겨울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이라 이름 붙여놓고 900만 비정규직을 가난뱅이로 만들고, 자고 난 아침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살이 인생으로 만든 지가 오래전 일이다. 녹색성장이라 해놓고 오히려 삽질로 국토를 파괴하는데 14조원의 예산을 쓰겠다고 한다. 14조원이면 올해 졸업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70만명에게 연봉 2,000만원 짜리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액수다.
  
백성 배신하고 제대로 날 수 없어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모든 나라가 금융자본(외국자본 포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국가기간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규제를 더욱 풀고 자유무역(FTA)을 확대하고 있다.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반대하던 주부를 비롯하여 청와대 뒷산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했다던 평화적 촛불시위자들을 전과자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인터넷의 자유로운 토론광장까지 봉건시대의 낡은 칼로 재갈을 물릴 정도로 언론 탄압과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대통령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그즈음 교육현장에서는 성적조작이 이루어지고, 일제고사 참여를 자율적으로 맡겼다는 이유로 열 명 가까운 교사들이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나마 어렵게 인권의 사각지대를 담당해오던 ‘국가인권위원회’를 축소하고, 이미 실질적 사형제 폐지로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인권국가 위상이 사형제도 부활로 땅에 떨어지고 있다. 역사 해석과 교육은 다시 일제시대로 돌아가고 이 땅은 여전히 캄캄한 겨울이다.
  
이것이 지금 한창 하늘을 날고 있는 이명박 정부 1년의 화상(畵像)이다. 제 아무리 높이 나는 새도 땅을 딛지 않고는 살수 없다. 제 아무리 멀리 나는 우주선도 땅의 통제를 받지 않고서는 우주의 미아(迷兒)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땅은 백성이다. 땅을 배신하는 날개 짓의 끝은 추락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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