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아는 건가? 봄에 대한 몇 가지 징후들이 몸으로 감지된다.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점심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춘곤증으로 꾸벅꾸벅. 오후에 시내버스를 타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 만날 수 있다.
다들 꾸벅꾸벅. 빼꼼히 열린 차창으로 나른한 봄바람 버스 안에 수면가스를 뿌린 듯 사람들을 꾸벅이게 한다. 마치 자동차 앞 유리에 놓인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노호혼’이라는 인형처럼.
버스 안엔 두개의 눈이 있다. ‘감은 눈’과 ‘촉촉한 눈’. 물론 ‘감은 눈’들은 불편하고 선잠이긴 하지만 버스의 차장에 머리를 기대고 덜컹이는 버스에 쿵쿵 머리를 찧으며 졸고 있는 사람들이고, ‘촉촉한 눈’은 하품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면 왜 눈망울이 촉촉해지지 않던가.
봄날 버스안의 오후는 참으로 날씨만큼이나 나른하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쌔근쌔근 잘도 잔다. 내릴 때가 돼 엄마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줄 모른다. 한바탕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겨우 무거운 발을 뗀다. 하지만 눈엔 아직 따사로운 봄날의 나른한 잠이 가득해 제대로 떠지지 않고 칭얼대며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나른한 봄날과 푸른빛의 새싹
봄은 역시나 이렇게 몸이 먼저 알고, 몸이 의지를 이기는 한때이지 않은가 한다. 봄날 오후의 나른함을 즐기기에 시내버스 투어만큼 좋은 것은 없는 듯하다.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강력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이다.
나른한 봄날 버스안의 평안함과 더불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봄날 또한 아스팔트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마냥 버스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나른하다. 달리는 버스를 스치며 지나는 가로수의 파릇파릇 돋아나는 푸른빛의 새싹들이 그 평안함에 정점을 찍는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난 4월과 5월의 나뭇잎들의 밝은 푸른색을 가장 좋아한다. 나뭇가지 끝에서 돋아나 나무를 뒤덮는 연약한 듯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이 무렵의 나뭇잎들은 눈에 담고 싶을 정도로 밝고 환한 푸른빛이다. 여름의 짙은 녹색 잎이 주는 시원함과 가을 의 단풍이 주는 화려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멍하니 한참을 내가 좋아하는 계절의 빛나는 푸른빛에 푹 빠져들었다. 그런데 자꾸 시선이 분산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뭇가지의 새싹의 푸른빛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눈이 가로수의 바닥으로 시선이 가는 것이 아닌가.
꽃잔디, 공존하는 도시색인지 의문
가로수의 바닥으로 자홍빛의 꽃잔디 꽃이 활짝 피어있다. 꽃잔디 꽃의 다소 튀는 색 때문이었다. 꽃잔디의 자홍빛이 나뭇잎의 푸른빛을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색에 대해 잘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두 가지 색은 서로 보색관계로 같이 쓰이는 색깔 톤은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잘못 썼을 때는 다소 촌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래쪽의 붉은-보라계열의 자홍색이 다소 들뜬 느낌으로 새싹들의 푸른빛을 상쇄해 계절감을 잃게 할 수도 있다고도 한다.
광주시는 U대회 유치기원의 뜻을 담아 광주시 전역의 화단과 가로수 아래의 하층식재로 기존의 잔디를 파내고 꽃잔디 식재에 한창이다. U대회 유치의 간절한 소망을 실사단에게 ‘우리는 U대회를 위해 들떠 있어요!’라고 색으로 까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소 들뜬 느낌의 꽃잔디 꽃색으로 광주전역을 색칠하는 것이 스스로 광주를 가볍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꽃잔디의 꽃이 예쁘지 않다거나, 꽃잔디가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라 할 수도 있으나, 도시의 자연은 인위적으로 만들지는 것이 대부분이며, 그러므로 도시의 색을 만들 때 보다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그리고, 도시를 나타낼 수 있는 색으로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도시색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떤가 해서 애꿎은 꽃잔디를 빌어 탓해본다.
박상은 광주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 간사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