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는 ‘국사’ 아닌 세계역사 문제”
“근로정신대는 ‘국사’ 아닌 세계역사 문제”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6.29 1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배주영 신광중 교사, “오랜세월 무지·무관심 부끄러워”

한국정부의 무관심 속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핏빛 외침이 해방 64년이 되도록 계속되고 있다. 일본정부와 전범기업 (주)미쯔비시중공업도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을 이유로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11월 광주전남 출신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패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5월17일부터 이달 22일까지 미쯔비시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전국적으로 3만여 명의 의지를 모아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이하 나고야 지원회)에 전달했다. 나고야 지원회는 지난 20년 동안 근로정신대 피해할머니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이다. 

현직 교사의 신분으로 서명운동의 일선에 섰던 신광중학교 배주영 선생을 만났다. 배 선생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한 역사수업을 실시하고 학생들이 피해 할머니들과 나고야 지원회에 응원의 편지를 쓰도록 독려했다.

학생들이 쓴 편지는 8월13일부터 16일까지 나고야에서 전시될 계획이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신광중학교 3학년 협의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 배주영 신광주학교 교사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한 역사수업을 실시하고학생들이 피해 할머니들과 나고야 지원회에 응원의 편지를 쓰도록 지원했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인권영화제 기간에 정우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상 ‘14살, 나고야로 끌려간 소녀들’을 보다가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는 시민모임이 만들어지기 전이었는데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일정 때문에 결성식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4월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면서 활동하게 됐다.

▲ 역사전공자로 이전부터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텐데. 

물론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실제로 광주와 전남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작년에 고등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피해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일단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참담했다. 교과서에만 나오는 과거의 일로만 치부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피해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무지했고 무관심 속에 방치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역사교사로서 뭔가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역사교사니까 다른 사람보다는 도움이 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 전범기업 미쯔비시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길거리 서명운동에 나서기까지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것 같다.

과거에 학생운동을 했던 경험이 전혀 없다.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했고 무난하게 직장에 들어왔다. 교사활동 이외에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별다른 각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고 그냥하자고 해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다. 시민모임이 명망가 중심의 운동도 아니고 회원들에게 특별히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느리고 세련되지 못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것이 잠자는 양심을 움직였던 것 같다.

▲ 서명운동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전남대 후문에서 서명을 받는데 처음에는 서명 테이블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말문이 열리지 않아 서명을 독려하는 발언도 쉽지 않았다. 선전물을 받아주는 사람과 외면하는 사람이 반반이었다. 내가 부끄러워 할 것도 아닌데 외면하는 사람에게는 내민 손이 부끄러웠다. 거리서명전은 효율적이지 못했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 지원과 관심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배주영 신광중학교 교사는 근로정신대 문제는 국사가 아닌 세계역사 문제라고 강조했다.

▲ 학생들을 대상으로 근로정신대 교육을 하고 서명까지 받았는데 학교에서 막지는 않았나?


학교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역사교사로서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계기교육을 할 때는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교사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하지만 이번 교육은 계기교육의 대상이 아니어서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전에는 한일 간의 민족감정 때문에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번 수업에서는 그렇게 느낀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지원했던 일본 나고야 지원회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학생들이 지금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업 후에는 자발적으로 서명을 받고 피해 할머니들과 나고야 지원회에 보내는 편지도 썼다. 교과서 속 죽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는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 소중한 수업이었다.

▲ 학생들이 나고야 지원회에 쓴 편지가 8월 평화주간에 전시된다고 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 편지를 더 잘 쓰게 할 걸 그랬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피해 할머니와 나고야 지원회에 편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 매체에서 이 사실을 보도했고 학생들도 방송 등을 보면서 작은 실천이 사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 5·18 기간 동안 역사교사 지역모임과 레드페스타 행사에 참여한 걸로 알고 있다.

전국역사교사 모임은 전교조에 속해있는 교과분과 가운데 하나다. 현재 광주지역 회원은 30여명 정도이며 15명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모임 선생님들과 레드 페스타 행사에 참여해 근로정신대 문제를 집중 홍보했다. 편집된 영상을 상영하고 미쯔비시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부스 밖에서는 홍보 펼침막을 전시하고 할머니들에게 보내는 응원메시지도 받았다.

▲ 현재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중학교의 역사 과목은 독립교과가 아니라 사회과에 속해 있다.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높게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역사 과목이 사회과와 다른 독립교과로서의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또 국사 이외의 세계사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국사교육은 국수적으로 흐르고 세계사는 비전공자가 담당해 축소·왜곡되고 있다. 역사교육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한국 근현대사를 선택과목으로 둔 것이 일례다. 근현대사를 따로 둘 것이 아니라 통합해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 근로정신대 문제는 국사의 문제가 아닌 세계역사와 인권, 평화의 문제다.

▲ 이명박 정부에서 역사교육이 퇴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수정문제로 한차례 진통을 겪었다. 이미 검인정이 끝난 교과서를 수정하도록 만들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현직 선생님들이 직접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 ‘배움책’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간디학교의 최보경 선생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권이 바뀐 후 수업내용까지 검열하고 정부 스스로 승인한 교과서까지 일방적으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5·18 기념재단에서 발간한 책자에 대해서도 압박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지난해 전국역사교사 모임에서 항의광고도 냈다.

▲ 향후 활동계획이 있다면?

근로정신대문제에 대한 수업 한번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2학기 때는 역사동아리를 만들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