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녹색’일자리, ‘인턴’일자리, ‘희망근로’ 등 갖가지 이름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시도되고 있지만 한편에선 ‘삽질경제’, ‘절망근로’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숫자 늘리기에만 치중하거나 고용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는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자리라는 비판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그 자리를 다시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어 비정규직을 늘리는데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의소리>는 하종강(55)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과 인터뷰를 통해 정부의 일자리 정책,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하 소장은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다가 지원이 끊기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일자리로는 나라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 소장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긍정적 평가가 전혀 없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들이는 노력과 예산에 비해 그 효과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하 소장과의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진행했다.
“‘인건비 절약=경쟁력 강화’ 고정관념 버려야”
▲ 녹색일자리 96만개 창출, 청년인턴, 희망근로 등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임시직들이다. 자생적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다가 지원이 끊기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일자리들로는 나라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
▲ 희망근로나 청년인턴 등 일자리 대책에 대해 ‘단기적 처방’이라고 비판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책으로 일하게 된 이들은 “만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어 낫다”는 반응이다. 긍정적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평가도 있다.
-당연히 긍정적 평가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들이는 노력과 예산에 비해 그 효과가 너무 적다. 예를 들어 청년인턴의 경우만 해도 “임시직들에게 업무를 제대로 가르쳐줄 수 없고, 오히려 인턴 관리 업무만 늘었다”는 불평이 나오는 상황이다.
▲ 중장기 일자리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에 동의하신다면, 정책 기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비정규직이나 청년실업 문제는 정부 정책이나 기업의 인력 운용 방식에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들이 개선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집행해야 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인건비를 절약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라는 고정관념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어떤 일자리일까. 이런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 달라는 요구가 있는데 현실은 쉽지 않아 보인다.
-‘좋은 일자리’란 참여하는 구성원이 보람을 느끼면서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뜻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자발적으로 시행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시행해야 한다. 하나만 이야기한다면, 비정규직의 수를 줄이고 그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좋은 일자리들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방안이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2년이 지나도록 계속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은 그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 뿐 아니라 기업 경쟁력이나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친기업-반노동’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에 동의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 하나만 봐도 그렇다. 기업이 인건비를 절약하고 인력 관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느라고 나라 경제를 망치는 꼴이다.
“2년 초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강제해야”
▲ 비정규직 법안이 논란이다. 현행 비정규직법 역시 고용안정의 의무만 부과하고 있을 뿐 근로조건에 대한 강제 조항이 없다. 법이 개정돼야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보나.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강행 규정은 둘째로 하더라도 우선 기업에 고용 안정 의무라도 제대로 부과하도록 해야 한다.
현행법으로는 2년이 되기 직전에 비정규직을 해고함으로써 기업이 영원히 그 직책에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년이 초과됐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어차피 계속 필요한 직책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바뀌더라도 2년이 초과되는 시점부터는 그 자리에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개정하는 것 하나만이라도 시급하게 개정해야한다. 이는 입법 기술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노동자도 힘들겠지만, 경제(성장)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한국 경제는 저성장이 아니라 양극화가 문제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도 선진 30개국 평균 경제성장률은 2% 대에 머물렀지만 우리나라는 4% 대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 중에 노동소득의 비중이 너무 낮으면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초 상식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양극화 문제 역시 해소될 수 없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적은 나라일수록 기업 경쟁력과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첫째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고통스럽고, 둘째 비정규직의 수가 늘어나고 그 차별이 확대되는 것은 기업경쟁력과 나라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해결돼야만 한다.
▲ 노조 (정치)파업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은 여전하다. 특히 생산기반 등이 취약한 지방의 경우, ‘대기업 노조의 파업= 지역경제 악화’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인식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합의 파업은 단기간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유익한 영향이 더 크다”는 결론만 던져봐야 반발이 더욱 클 뿐이다. 짧은 설명으로는 답하기 쉽지 않다. 노동조합의 파업은 당연히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며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합법적 권리로 보장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특별히 투쟁적이고 과격한 노선을 지향하기 때문이 그런 원리가 통용될 수 없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또 한참을 설명해야 한다.
쌍용자동차의 경우만 봐도 노동조합이 제안한 방식(직원을 20% 해고할 것이 아니라, 전체 직원의 노동시간을 모두 단축시켜서 노동비용을 20% 절감하자는 방식. 쉽게 말해, 정리해고 대상자 1천 명에서 가해지는 부담을 5천 명에게 골고루 분산시키는 방식)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훨씬 줄일 수 있는 방안이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법이다. 정부와 기업이 그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 경제외적 요인들이 걸림돌이다.
“공교육에서 노동교육 해야 올바른 사회 인식 가능”
▲ 노동운동의 위기가 이야기되고 있다. 몇 해 전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노동운동이 희망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긴 호흡으로 보면, 인류 역사는 지금까지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조금씩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그 흐름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노동자들이 조금 더 적게 일하면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류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이라는 뜻이다.
▲ 정책 당국과 기업, 노동계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정부는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은 적정한 인건비를 부담하며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비정상적으로 심각한 반노조 정서를 고려해 좀 더 유연한 전략 전술을 구사하면서 사회 전반적 의제로 시야를 좀 더 넓혔으면 좋겠다.
▲ ‘노동문제 교육’을 강조해 왔는데 왜 중요한가.
-제도권 교육이든 비제도권 교육이든, 올바른 교육을 통해서만 올바른 인식이 가능하다. 식민지, 분단, 독재가 근 100여 년간 이어진 비정상적 근대 역사 속에서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한 세력들에 의해 주도된 우리 교육은 올바른 사회 인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내용으로 점철돼온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중요한 비중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권 교육의 노동교육을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 오랫동안 노동문제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노동문제 등 강의를 많이 해왔다. 청중이나 청강생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나 기억에 남는 질문, 답변을 했는지 소개한다면.
-제기되는 질문은 항상 거의 비슷하다. 예를 들어, 대기업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는 정당한가? 한국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투쟁적이어서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외국 자본이 투자를 꺼리는 것 아닌가?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통해 일류 기업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상대적으로 무능해서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 똑같은 대우를 하라는 것은 경쟁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 때문에 기업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도산하면 나라 경제에 결국 해로운 것 아닌가? 이런 질문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하자면 각각의 질문마다 최소한 3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생들이 거의 한 학기 정도의 수업을 듣고 나서야 ‘반드시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정도의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 그 동안의 내 경험이다. 여기서 제한된 지면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한 생각들에 대해 작은 의심이라도 품어달라는 부탁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그는 1994년 제6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그는 한국노동교육연구원 객원교수, 인천대 강사, 노동자센터 교육위원, 서울중앙지법 조정위원 등을 맡고 있다. 그는 홈페이지 ‘노동과 꿈(http://www.hadream.com)’을 운영하며 활발한 언론 기고와 저술활동을 통해 노동문제에 천착해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동이라는 말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단어로 여기고 노동 문제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 ‘희한한’ 현상은 잘못된 제도권 교육이나 비틀어진 수구언론 때문이지 노동 운동이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특별한 일이어서가 아니다(언론 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