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물가 걱정이 한창이다. 최근 뉴스에는 국민실질소득이 낮아졌다는 통계가 발표되고 대학생들의 등록금 반값 항의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현 정권의 실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은 한편, 저축은행 비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검찰 개혁문제와 맞물리면서 권력 투쟁의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권력의 피라미드로 올라갈수록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등속은 걸러지고 차기 정권을 잡느냐 놓치느냐라는 골자만 징그러운 해골처럼 드러난다.
이런 와중에 인터넷에서 한없이 증식을 거듭하는 네티즌들의 이야기판은 체념과 달관의 경지를 보이기도 한다. 다음 아고라에 한 네티즌이 이런 글을 올려 놓았다. 고물가 시대 대안으로 외식과 마트, 극장, 나들이, 간식 등을 끊고 겨울에 가스보일러, 여름엔 에어콘을 가동하지 않으며 자동차 운행 하지 않기, 병원 안가기 등과 같은 실행지침을 소개했다. 그러자 여기에 붙여진 댓글들이 가관이다.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땅속으로 들어가라, 지지리 궁상, 좀 더 벌어서 써라, (그런 처지에)인터넷은 왜 하냐, 애기 잠잘 때 신문 돌려라, 그래도 차는 필수다…이 중 좀 긴 답글이 눈에 띤다. 시골에 살면 그러한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요지다. 사먹을 때 없으니 외식은 저절로 끊게 되고 구멍가게 말고는 마트란 없으니 저절로 안(못)가고, 군청 소재지까지도 극장은 없으니 이도 걱정 끝, 나들이는 동네 야산 도니 돈 들일 없으며, 간식 역시 더 말할 것 없고, 겨울에는 나무 떼고 여름 에어컨은 당초 필요 없고, 자동차는 이미 처분했으며, 병원은 보건소 정도로 만족하고 민간요법으로 지내시라…등등이다. 사실 웃자고 하는 소리다.
그런데 이 우스개 농촌살이 중 절반 정도는 들어 맞는다. 인구 8만명으로 군단위로는 가장 큰 해남군 군청 소재지 해남읍에도 극장은 없다. 또 12개 면 단위에 도시형 마트란 없다. 반면 병·의원은 읍에 종합병원을 비롯해 대형 병원만도 5곳이 있으며 면단위에는 두세개의 의원이 있다. 외식할 식당은 인근에 관광지가 있는 곳이라면 면단위에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일년 가야 외지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은 깊은 마을은 식당은 물론이거니와 구멍가게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맞다.
요즈음 시골에는 나무 땔감이 널려있다. 마당에다 솥 걸어놓고 가끔 불때서 닭이라도 한 마리씩 잡기도 하겠지만 가스레인지와 석유보일러가 99% 농가에 보급돼 있다. 물론 화목보일러도 쓴다. 겸용으로 쓰기도 하고 온상용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주택용 보일러를 목돈 들여 화목보일러로 바꾸느니 그냥 최대한 절약해가며 쓴다. 차?, 차는 오히려 이동거리가 긴 농가에서 필수다.
하루 몇 대씩 지나다니는 군내버스에 의지하는 분들은 운전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은 상노인들과 운전을 못하는 여성노인들 뿐이다. 병의원 역시 필수기관이다. 지난해 땅끝 국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뜬 한 이웃은 해남읍-광주까지 이송 중 과출혈로 결국 사망했다. 또 한 이웃은 손가락에 생긴 염증을 간단한 보건소 처치로 견디다가 파상풍으로 진행, 하마터면 손가락을 잘라낼 뻔 했다.
방앗간을 운영하며 농기계를 다루는 농민이었다. 오늘날 도시의 삶에 지친 많은 이들이 귀농과 전원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현재 농촌생활은 도시인들 사이에 풍자의 소재로 쓰이는 선 정도에서 그치는게 낫다. 그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