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안 어부들에게 장어는 사철 잡히는 어종으로 꼽힌다. 바닷가 마을 근처 오일장에 가면 봄부터 겨울까지 어느 계절이나 장어는 눈에 띤다. 이렇게 철?없이 잡히는 장어라 해도 뜨거운 여름 한철 보양식 겸 먹는 생선으로 이만한 고기는 없다.
어린이 팔뚝만한 크기의 장어를 내장을 빼고 배를 갈라 펼친 후 굵은 천일염을 살살 뿌려 짚불에 올리면 껍질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간다. 된장 조금 발라 잎사귀만한 양파에 싸서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길쭉한 몸뚱이를 반으로 갈라 뼈를 발라내 굽는 이 장어 이름은 붕장어인데, 날로 회를 뜨면 ‘아나고’가 된다.
반면 일본인들이 좋아한다는 하모는 갯장어라 불리는데 주둥이가 뾰족하고 등위에 난 지느러미가 새날개처럼 너울너울한 것이 붕장어와 생김새가 다르다. 이 갯장어는 거센 잔뼈가 무수히 많아 칼 잘 쓰는 요리사가 잔뼈를 거슬려 가며 촘촘히 썰어주어야 먹을 때 부드럽게 넘어간다.
갯장어는 성질도 매우 사나와 그 날카롭고 긴 주둥이에 한번 물리면 심할 경우 손가락이 잘라질 수도 있다. 게다가 이 놈은 한번 물면 놔주질 않아 결국 손가락이 어떻게든 상하고 난 뒤에야 벗어날 수 있으니까 접근할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어쨌거나 일본의 영향을 받아 ‘하모 샤브샤브’라는 갯장어 요리를 즐기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바닷가 사람들은 하모는 맛이 싱겁고 귀찮은(잔뼈 때문에) 생선이라 해서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반면 붕장어는 뼈까지 파삭파삭하게 구어 그대로 다 먹을 수 있으니 버릴게 없다.
그런데 올 여름 이 장어가 귀하다. 매년 8월에 열리는 오래된 바닷가 마을 초등학교 동창회에 빠지지 않던 장어구이가 올해는 삼겹살로 대처됐다. 반경 20여km에 이르는 어촌에서 가장 손쉽게 구했던 장어를 올해는 살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신 등장한 생선이 개불과 냉동 병치, 그리고 때마침 가까운 어장에 걸린 중치 크기 농어였다.
원래 겨울에 먹는 개불이라 그런지 여름 개불은 질기면서 맛이 덜했고 병치는 선어라고 하지만 눅진하니 제 맛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 여름 회는 아무리 바닷가라 해도 좀 꺼려지지 않는가. 작년까지만 해도 전복이 빠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능력있는 주최측이라 해도 너무 비쌌던 모양이다. 그 이전 해에는 전복구이가 먹고도 남아돌았다.
동창회를 개최하는 이 초등학교는 한때 70여명의 어린이를 한반으로 학한년 12반까지 있던 규모였고 이제 그 어린이들이 자라 환갑나이에 접어들었는데 10여년 전부터 옛정을 되살려 매년 만난다고 한다. 외지에 나가 사는 이들이 더욱 적극성을 띠고 준비하는 통에 이제 이들이 동창회를 하는 날은 근처 서너 동네 사람들이 축하 차 한잔 같이 하러 모여 들 정도로 소문이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창회원들의 열과 성의는 똑같거나 더 성한데 가만히 살펴보면 바닷가 안주거리 생물은 양과 가짓수가 줄어든다. 대신 도시 마트에서 손쉽게 살수 있는 먹거리들로 대처돼 간다. 마치 아직은 청정해역에다 풍요로운 갯벌,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갯바위 등 천혜의 어장으로 손꼽히는 전남 남해 해안에 철따라 돌아오는 연안어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사실 불과 몇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동창회의 식단을 보며 바다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반세기 전 자신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곳으로 돌아와 극심한 고향산천의 변화를 어떻게 감내하고 있는지 그것이 더 안타까운 일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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