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송을 듣는 주 청취자들은 20대에서 4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들이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마지막 투표율을 올린 주역들로 추정되고 있다. 때문에 ‘나꼼수’가 서울시장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는 아무리 지상파 방송 3사를 비롯한 주류언론들이 부인하고 싶어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청취자를 최소로 잡아도 매회 200만명 이상이 듣는다고 한다.
이 숫자가 기성 매체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 조선일보의 사례를 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지난 1988년 5공 비리와 관련, 청문회에 출석했던 당시 방우영 조선일보회장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200만 조선일보 독자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소리쳤다. 일제시대 ‘천황찬가’에 이어 ‘전비어천가’로 악명을 듣던 조선일보 사주가 그 자리에서도 얼마나 오만방자한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밤의 대통령’이란 말을 들었던 방우영의 권력은 어디서 왔는가, 그 근거가 바로 이 “200만 독자”였다. 그에게 주어진 힘은 언론권력이었고 그 권력은 독자에게서 나온다. 지금도 조중동을 이끌며 방송까지 진출해 거대언론권력으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조선일보의 지지기반은 결국 독자다.
‘안티조선’과 같은 전국민적 저항이 일어난 후 최근 독자수는 130만명 정도라 하는데, 이는 ABC에 보고된 숫자다. 그 숫자를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조선일보의 130만 독자와 ‘나꼼수’의 600만 청취자는 무려 5배의 차이가 난다. 방우영을 밤의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이들이 ‘불과(?)’ 200만 독자라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주진우 시사인기자, 김용민 전교수로 달랑 4명에 불과한 ‘나꼼수’ 출연자의 권력은 어디까지일까. 이들 4인방이 방우영처럼 권력을 누린다면 밤뿐만 아니라 낮의 대통령까지 해야 맞을 정도다.
언론이 제4부 권력이란 말을 듣는 것은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어 그들로부터 위임받은 힘을 부릴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모래알이나 다름없는 독자 즉 국민들로부터 위임받는 권력은 선거 때 한장한장의 투표를 모아 받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투표에서 유권자 개개인의 뜻을 강제할 어떠한 힘도 발휘되어서는 안되듯이 팟케스트도 이와 똑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아이폰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팟케스트는 자발적 청취자들을 확보한다. 즉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찾아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팟케스트 청취자들은 매우 주관적이며 분명한 소신과 목적성을 갖는다.
이러니 ‘나꼼수’의 위력을 경시할 수가 없다. 문화비평가 진중권씨가 ‘나꼼수’를 향해 ‘너절리즘’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나꼼수’가 세상을 바꾼 고발 중 대표적인 것이 청와대 내곡동 사저비리다. 주류언론의 정권눈치보기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더 심하다는 말이 나오는 현재 이런 보도를 한 방송이 너절한 매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언론이 정론을 펴고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지 않는다. 결국 어제오늘 ‘SNS규제 검토’ 운운하는 시대착오적 발언이 여권과 정권 수뇌부에서 솔솔 나오고 있다.
사람이 개를 무는 일처럼 기상천외할 사건이 생기면 해외토픽에 소개된다. 더군다나 인터넷 최강국이자 아이폰 생산으로 국부를 일궈가고 있는 이 나라에서 SNS를 규제한다니 쫒기고 있는 집권층이 농담삼아 지껄인 말이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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