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파밸리는 포도주, 외래순은 유가공제품, 에밀리아는 강한 식품중소기업 등 저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다. 푸드밸리의 특징은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3G바이오팀’이 독일을 거쳐 푸드밸리에 도착한 것은 3월 12일이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 85km 떨어진 인구 3만6천명의 소도시 바게닝겐 시에 자리잡고 있다. ‘푸드밸리재단’을 먼저 찾았다.
농업에 특화된 바게닝겐대학 설립
재단에서 국제교류 매니저인 안네 멘싱크(Anne Mensink) 박사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식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키우고, 연구 결과를 신기술로 사업화하는 것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푸드밸리재단을 설립했다고 한다. “끊임없는 혁신과 개방된 지식네트워크”가 푸드밸리 경쟁력의 가장 큰 요소라고 강조한다.
19세기 말 유럽은 미국에서 대량 수입된 밀 때문에 식품가격이 뚝 떨어졌다. 이때 네덜란드는 시장개방 대신 농업을 혁신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 농업에 특화된 바게닝겐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오늘날 바게닝겐대학은 100년이라는 전통을 배경으로 푸드밸리를 세계 식품산업의 중심무대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최근 바게닝겐대 연구센터(UR: Wageningen University Research)를 별도로 설립했다. 농업과 식품에 관한한 종자개량, 식물유전자 등 기초연구와 더불어 맛, 향미, 제형, 포장, 저장 등 응용연구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마치 자전거처럼 지속적으로 ‘혁신’이라는 페달을 밟아줘야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저가의 농산물을 이겨내기 위해 혁신이라는 페달을 밟는 쪽을 택한 것이 오늘날 이런 경쟁력을 키우게 된 것이죠.”
바게닝겐대 연구센터의 알트 디퀴제 원장 말이다.
식품에 대한 모든 아이디어 자라는 곳
푸드밸리는 세 분야의 유기적인 협력에서 최강의 역량이 나온다. 첫째, 식품과 식물의 재배기술 보유 기업들이다. 왕립 프리슬란드 캄피나, 하인즈, 네슬레, 왕립 과일전문가 그룹, 카길 등 20여개 기업들은 박테리아, 유산균 등 식품가공기술은 물론 종자개량에서도 독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기초지식을 제공하는 연구기관들이다. 바게닝겐대학 식품 및 바이오연구센터, 국제식물연구소, 식품안전연구소, 미래식당, 식물유전자연구소, 발효미생물유전자연구소 등이 그들이다. 셋째, 응용기술을 연구하는 기업연구소들이다. 이 세 분야가 서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낸다.
TIFN은 ‘최고식품영양연구원(Top Institute Food & Nutrition)’이다. 푸드밸리를 육성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 주도로 기업, 그리고 6개의 주요 연구소들이 참여하여 설립했다.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야, 즉 영양과 건강, 감각과 구조, 식품첨가물과 기능성, 지속적인 식품산업의 발전방안, 기능성 유전자, 지식경영 등 기초연구 전반을 주도한다. 1998년 21개의 특허와 1,000편의 출판물, 90개의 박사 논문을 생산했다.
이런 성과가 쌓여 2010년 현재 총매출 2천7백만 유로, 과학자 300여명, 카길, 켈로그 등 다국적기업 파트너 19개, 연구 파트너 6개 등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와 같은 기초연구기관의 지원에 힘입어 푸드밸리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80세 노인 아이디어 ‘발레스(Valess)
2004년 독립된 조직으로 ‘푸드밸리재단’이 만들어졌다. 초창기 기업들이 지식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혁신을 촉진시키기 위함이었다. 네덜란드 경제농업혁신부, 지방정부, 바게닝겐 시당국, EU, 바게닝겐 연구센터, 회사들이 참여하여 컨소시엄형태로 설립했다. 베테랑급 네트워크 전문가 14명이 실무자로 활동하면서 푸드밸리 내 110개 정도의 다양한 모임들을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하고 정보를 원활하게 유통시킨다. 뿐만 아니라 유럽농업 전반에 걸쳐 재배, 가공, 유통, 혁신 등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재단은 매년 혁신제품을 선발하여 ‘푸드밸리 상’을 수여하고, 전시회, 세미나, 홍보, 방문객 안내 창구 역할을 맡아 처리한다. 푸드밸리에 어떤 기업이 어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몰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재단에 연락하면 가장 적절한 상대를 찾아준다. 기술, 인력, 자금, 마케팅파트너 등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암스테르담 호텔 주방장 출신 80세 노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발레스(Valess)’가 제1회 푸드밸리 상을 받았다. 그 노인은 고기를 대신할 수 있는 다이어트 식품소재를 만들겠다고 푸드밸리 사무국에 찾아왔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우유 단백질과 해조류에서 새로운 섬유질을 분리해 ‘발레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무국에서는 프리스란드캄피나라는 회사의 연구소와 연결해줬다. 타당성조사 결과 육질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면 시장에서도 반응이 괜찮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물론 시장에서는 이미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식품소재들이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발레스’처럼 소화가 뛰어나고 식감이 좋은 섬유질 소재는 아직 없었다.
우유와 해조류로 만든 다이어트 고기
치즈를 만들고 남은 우유 부산물에서 단백질을 분리했다. 그 단백질에다 해조류로부터 얻은 다이어트 성분이 함유된 섬유질을 섞었다. 육질이 고기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밋밋한 맛이 문제였다. 향과 약간의 매운맛, 철분과 비타민을 첨가하자 맛과 영양분도 고기와 비슷해졌다. 이렇게 해서 지방질이 제거된, 고기와 흡사한 식품소재 ‘발레스’를 만들 수 있었다.
고기보다 원재료 가격이 낮아서 이윤폭도 컸고, 무엇보다 버려지던 치즈 부산물을 활용하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이다. ‘발레스’는 혀끝에서 맛의 혁신을 가져왔다. 기존 제품을 변형시킨 게 아니다. 고기가 아니지만 고기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바이오신소재다.
‘발레스’는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엄청나게 버려지던 우유 부산물을 이용함으로써 낙농가들에게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 줬다. 다이어트 흐름을 타고 스위스, 벨기에 독일 등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관련된 포장산업도 새롭게 창출됐다.
푸드밸리는 혁신의 역사가 매일 새롭게 쓰여지는 현장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5억 톤의 채소부산물이 발생한다. 그 중 일부만 닭의 사료로 쓰이고, 대부분 하수구에 버려졌다. 채소부산물을 깨끗이 씻어 야채건강음료로 만들어 큰 수익을 올리는 기업도 있다. 감자스틱을 튀길 때 기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지방질을 10% 정도 줄일 수 있는 튀김기술을 개발한 제품도 푸드밸리 상을 수상했다.
식품을 첨단산업으로 이끄는 기술개발
TLO사는 마스티리트 병원과 함께 노화현상으로 발생하는 눈의 황반병을 예방하기 위해 계란에다 색소와 영양성분을 집어넣는 기술을 개발해서 히트를 쳤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마라톤 선수를 배출한 나라가 이디오피아다. 테프(Teff)라는 이디오피아 전통식품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살이 찌지 않고, 근육을 강하게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는 식물이다. 기후와 토양 차이로 테프를 유럽에서 재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푸드밸리의 한 회사가 바게닝겐대학 연구센터와 오랜 연구 끝에 유럽에서 테프의 대량재배에 성공하였다. 그밖에도 첨단 IT기술을 응용한 ‘미래식당’ 프로젝트, 식품의 다양한 영양성분들이 체내에서 어떤 대사작용에 관여하는지를 보여주는 기계장치 개발 등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많다.
푸드밸리는 농업과 식품이 첨단산업으로 진화하는 현장이다. 농업에 바탕을 두고 경쟁력 있는 생물산업의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 전남의 입장에서는 배울 게 많은 곳이다. 안네 박사는 조만간 한국 방문시에 전남 생물산업진흥재단도 들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푸드밸리 현주소
․ 경제규모 한화 약 945조원(1유로당 1,500원 기준), 50% 수출,
네덜란드 국내총생산(GDP)의 10%(우리나라 GDP의 54%)
․ 일자리 60만개, 농산물수출 세계 2위, 1,400여개의 식품회사들
․ 주요 입주기업 : 네슬레, 유니레버, 하인즈, 하이네켄, 카길 등
․ 과학자 8천여 명, 식품전문가 1만5천명(70개 회사 부설연구실, 20여개의 전문연구기관에서 연구)
․ 대표 연구기관 : 바게닝겐대 연구센터(University & Research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