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힘들다
대기업도 힘들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5.02.09 18:41
  • 댓글 0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이 마침내 9년간의 긴 사법적 족쇄에서 벗어났다. 며칠 전 2심 재판에서도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제 그는 본격적으로 혁신과 투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오랜 법적 리스크를 벗어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과연 삼성전자는 다시 예전처럼 힘차게 도약할 수 있을까?

한때 한국 수출의 25%를 책임지던 삼성전자였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 속에서 삼성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몇 년 전 삼성전자가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한때 십조 원이 넘는 세금을 납부하며 국가 경제를 지탱하던 글로벌 기업이, 이제는 이익을 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니.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삼성전자의 존재감을 떠올렸던 터였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삼성을 걱정하고 있다.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무너질 것이라는 악몽을 떠올릴 것까지는 없겠지만, 과연 과거처럼 한국 경제를 이끄는 중심축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일부에서는 삼성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며, 기존의 운영 방식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분명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겠지만, 나는 또 다른 요인도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랜 시간 지속된 그룹 총수의 사법 리스크로 삼성이라는 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 그리고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 거대 기업을 지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은 문어발식 경영을 한다는 비판도 받고,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재벌을 향한 반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칩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간혹 잊곤 한다.

이재용 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2년 2개월간 감옥에 갇혀 있었고, 185번이나 법정에 서 있던 시간 동안, 세계는 빛의 속도로 변화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을 부러워하던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우리 뒤에 있지 않다. 오히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기술 패권을 다투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40세의 젊은 IT 천재가 200명의 전자공학 전문가들을 모집하여 단 2년 만에 미국 수준의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는데, 그 기술을 개발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인공지능 분야만이 아니다. 전반적인 산업 지형이 급격히 바뀌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변화의 뒷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기업을 재판정에 묶어두고,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와서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다니. 그 사이 삼성전자는 글로벌 무대에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렸고,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기업이 위기에 처했다. 이 잃어버린 시간과 기회는 과연 누가 보상할 것인가?

물론 대기업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기업 총수가 잘못이 있다면 응당 법적 책임을 져야 하고, 수백 번이라도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어온 끝에 나온 결과가 결국 무죄라면,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못살게 군 것은 아닐까?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한국 경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삼성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살아남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이 직면한 위기를 사법 리스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투자 부진, 기술 개발의 정체, 인재 관리 문제, 글로벌 기업 환경 등 내외부적인 문제가 더 큰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 전반의 분발이 요구되며, 정부 역시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적 뒷받침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정치권도 ‘기업이 먼저다’는 생각으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최신 HOT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