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이씨 문원들이 이종걸 관장의 초청으로 지난 22일 서울 이회영기념관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역사 탐방을 넘어 126년 전 조상의 행적을 되새기고 계승하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방문의 주인공인 ‘이흠’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강진 월출산 아래에서 차를 직접 만들며 학문과 교류에 힘쓴 지역 유학자였다.
그는 1899년부터 1907년 사이에 ‘경의문대’라는 유학시험에 응시하고 집안의 선조인 동강 이의경의 추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서울을 방문했다.
그 여정은 ‘서유만록’과 ‘서행일기’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는 경의문대에 합격해 성균관 박사가 됐다.
이흠은 서울 체류 중에 이유승 대감과 그의 여섯 아들들인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 이시영, 이호영과 깊이 교류했다.
고향 강진에서 정성껏 만든 차를 선물하며 우의를 나눴다.
이는 조선 말기에도 월출산 아래에서 차가 꾸준히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차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지식인들의 교류와 정신적 유대의 매개였음을 보여준다.
이흠의 조카이자 제자인 ‘이한영’은 한국 최초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를 제작했다.
그는 차 포장지 뒷면에 매화로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 넣고 ‘백운일지 강남춘신’ 이라는 문구를 새겨, ‘봄소식’ 즉 해방의 염원을 담은 시적 표현으로 독립정신을 형상화했다.
이는 스승 이흠과 이유승 일가와의 교유에서 비롯된 애국심과 저항정신의 문화적 표현으로 평가된다.
이흠은 이유승 일가 외에도 이상설, 윤주찬 등 독립운동가들과도 매일같이 교류했으며 특히 윤주찬과는 매우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윤주찬이 속한 ‘자신회’ 가 을사늑약 이후 을사오적 처단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진도로 유배됐을 때, 이흠은 직접 진도까지 찾아가 유배자들을 위로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수십 통의 편지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날 방문에는 이흠의 직계 후손인 이중효 교수가 참석, 서유만록과 서행일기의 원본을 직접 이회영기념관 관계자들에게 공개하며 이흠과 이회영 일가 사이의 교류를 역사적 사료로 증명했다.
특히 이현정 원장은 126년 전 이흠이 서울에 올라 이유승 대감에게 차를 선물했던 조상의 뜻을 기리며 이날 방문을 기념해 백운옥판차를 이유승 대감의 후손이자 전 국회의원인 이종걸 관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는 단순한 선물이 아닌, 전통과 정신의 계승,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우정과 역사적 연대를 상징하는 행보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행사는 강진 월출산 차 문화의 깊이와 독립운동 정신, 그리고 역사 속 조상들의 만남이 오늘날에도 문화유산과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