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농심 달랠 제도와 대책은 내놓아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미 예견된 바 대로 윤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다.
2016년 박근혜 대통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이후 7년 만이다.
그러니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민생 1호 법안’으로 지정됐던 양곡법은 결국 윤 대통령의 ‘거부권 1호 법안’으로 귀결된 셈이다.
아시다시피 양곡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예상치의 3∼5%를 넘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쌀값 하락을 막아 농민들의 소득 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민주당의 주장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자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입장대로라면 매년 1조 원 이상의 혈세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투입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농업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렇게 여야간의 주장이 엇갈린 상황에서 정부가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적어도 쌀값 안정과 식량 안보 확보 등 개정안의 입법 동기에 해당하는 민생 문제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대안을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
정부는 오는 6일 민당정 협의회를 열어 관련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당정이 국회 입법 과정에서 야당이 발의한 원안은 물론 국회의장의 중재안마저 두 번이나 걷어찬 사실을 감안할 때, 농민들이 바라는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예컨대 지난해 산지 쌀값 폭락 등으로 단위 면적당 벼농사 순수익은 무려 36.8%나 떨어지면서 쌀농사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농민의 삶에도 충격을 준 게 사실이다.
당장 광주 전남 지역 농민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센 것도 그러한 ㅇ이유에서다. 어려운 농촌 현실을 정부가 철저하게 무시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전남 도내 농민단체들은 지난 2019년을 기점으로 목표가격이 없어지는 소위 ‘변동형직불제’ 폐지로 인해 쌀값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어 2020년 태풍 등으로 농사가 흉작이 되면서 쌀값이 22만원까지 오르자, 정부가 45만톤의 수입쌀을 풀었다.
이번 양곡법은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농민단체는 쌀 농사를 대신할 수 있는 제도적 보안장치를 마련해야 만이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거부권만 휘두르고 돌아설 게 아니라, 법 취지를 살리면서도 부족한 점을 보완해 실질적으로 농민의 고통을 덜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농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번 개정안보다 더 전향적인 법안을 내놓은 뒤 ‘재입법’에 나선다면 야당의 재의결을 막을 명분도 사라질 수 있다.
특히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 실종을 막기 위해서도 정부·여당이 먼저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고 야당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