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깨진 유리창
  • 문틈 시인
  • 승인 2023.09.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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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현상인데 어느 학자가 갖다 이름 붙인 것이다. 이론인즉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다른 유리창이 깨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처럼 범죄도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설이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했다간 나중엔 지역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건물에 누군가가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면 그 주변 유리창들도 다른 사람들이 돌을 던져 함부로 깨뜨린다. 그러다 보면 우범지대가 되기 쉽다. 얼마 전 분당구 서현동 칼부림 사건을 계기로 유사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러자 당국은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단속에 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에 살인 예고 글이 보름 동안 431건이나 게시되었다. 그 가운데 장난으로 올린 글 작성자 192명은 10대 미성년자였다. 경찰은 흉기난동 관련 사건으로 227명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20명에게는 살인미수 예비혐의를, 그리고 113명에게는 특수상해, 협박, 폭행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흡사 살인 시즌이라도 닥친 듯한 무서운 통계다.

선진국 가운데 치안이 가장 안전한 나라로 알려진 한국이 갑자기 치안이 아주 불안한 나라가 되었다. 나부터도 외출할 때는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같은데 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산을 타는 사람들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어쩌다 우리가 사는 나라가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흉기 난동 사건들은 유리창 이론에 딱 들어맞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더 말을 하면 흉기를 들고 아무나 마구 찔러서 죽이거나 상해를 입힌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다 보니, 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구나해서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칼을 휘둘러 무작위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이런 사건이 여기저기서 잇달아 일어나고 보니 때를 만난 듯 이런 극한 범죄가 분출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범인들은 대부분 정신 쪽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거나, 히끼꼬모리처럼 집에 콕 박혀 지내던 사람이 누군가가 실제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을 보고 대뜸 흉기를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손을 놓고 있지 않다. 앞서 통계를 낸 기간에 경찰은 고위험 정신질환자를 상대로 응급입원을 시킨 경우가 64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또 흉악범죄나 살인예고와 관련해서 경찰이 조치를 취한 대상이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금기시해 온 ‘유리창’이 깨졌으니 건물의 다른 유리창들도 와장창 깨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다. 막는 방법이 없을까.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경찰이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순찰을 돈다고 해서 쉽게 범죄 예비자가 눈에 뜨일 리 없다.

방법은 딱 하나다.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사회와 가족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데 처음에 치료를 받다가 지난 몇 년간 안 받고 있었다.” 어느 흉기 범죄자의 가족이 털어놓은 말이다. 잠재적 위협을 갖고 있다고 간주하고 거동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지켜 주었다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아들은 평소에 말이 없고 피시방만 왔다갔다 하며 살았다.” 어느 다른 범죄자의 부모가 한 말이다. 이번 흉기 살인 사건을 계기로 심한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지 말고 더 가까이서 우리 사회가 잘 보살펴야 한다.

경찰이 일일이 다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건이 나면 범인을 붙잡는 일을 할 뿐이지, 뉴욕처럼 요소마다 경찰을 세워 놓는다고 해서 범죄를 막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경단을 두어 순찰해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더 크게는, 이것은 거대담론같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영국이 정부 부처로 외로움부(장관)를 두어 고독으로 인한 자살, 범죄를 다루듯이 심리안정부 같은 부처라도 두어 정부 차원에서 다루었으면 한다.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고독감, 소외감, 열패감 등으로 분노가 쌓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국민에게 전 생애에 걸쳐서 헝클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사회적 연결망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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