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에 피렌체는 도덕적, 종교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인문주의적 가치가 급격히 위협받았고, 사회적 불안감이 퍼져갔다.
도미니쿠스회 수도사 사보나롤라(1452~1498)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사보나롤라는 볼로냐에서 조금 떨어진 이탈리아 동부 페라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만토바의 유력가문이었던 보나코시 출신이었다. 그는 의사이자 파도바 대학 교수였던 할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1468년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 철학에 심취하게 되었고, 1475년에 볼로냐의 도미니코 수도원에 들어갔다.
1479년에 사보나롤라는 고향으로 돌아와 성경과 아퀴나스 신학을 가르쳤다. 1482년 도미니코 수도회의 명령으로 그는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의 강사로 자리를 옮긴다. 이곳에서 그는 5년 동안 열성을 다했지만, 그의 설교는 페라라 사투리와 학자적 태도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1490년에 볼로냐로 돌아가 신학을 강연하고 있던 사보나롤라가 피렌체로 돌아왔다. 흥미롭게도 그를 다시 초빙한 사람은 ‘위대한 자 로렌초’(1449-1492)’였다. 로렌초의 후견을 받고 있던 철학자 피코 미란돌라가 사보나롤라의 개혁적인 이미지를 통해 메디치 가문의 신앙심을 대내외에 과시하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자 로렌초’의 기대와는 달리, 사보나롤라는 1년 후 산마르코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자마자 로마 교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메디치 일가의 폭정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독설을 내뿜기 시작했다.
사보나롤라는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부패를 씻기 위한 ‘신의 칼(laSpadadiDio)’이 곧 내려올 것이라는 경고를 퍼부었다.
이때 그의 설교는 피렌체 시민들이 좋아하는 간결한 문장과 대중을 사로잡는 쉬운 언어로 무장되었고, 산타 마리아 대성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을 정도로 많은 청중들이 모여들었다.
1492년 4월에 ‘위대한 자 로렌초’가 별세했다. 이러자 피렌체는 더욱 혼란에 빠졌고 사보나롤라의 종말론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로렌초의 뒤를 이은 장남 피에로 데 메디치(1472-1503)의 무능과 리더십 부재도 이를 부채질하였다.
미술계도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압도되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입각한 그림들을 포기하고 종교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보티첼리(1445-1510)도 마찬가지였다. 보티첼리는 1493년에 <천막의 성모(또는 성모자와 세 천사)>를 그렸다.
직경 65cm의 아주 작은 원형화는 조르조 바사리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라의 수도원장실에서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던 그림이다.
“작은 원형화는 매우 훌륭한데 등장인물들은 작지만 매우 아름답게 구성되어있다.”
그림의 주문자는 1486년에 ‘위대한 자 로렌초’에 의해 수도원장으로 지명된 로렌초의 절친한 친구였던 구이도였다.
그런데 ‘위대한 자 로렌초’가 죽자 사보나롤라의 사상에 동조하던 수사들이 구이도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는 카말돌리회 교단의 중재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면 그림을 감상하여 보자.
장면은 옥외 발코니를 무대로 한다. 성모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려 하고 있고, 아기 예수는 한 천사의 시중을 받으며 성모 마리아 앞에 서 있다. 좌우의 두 천사는 화려한 빨간 장막을 끌어당기고 있다. 장막의 상단에는 진초록 이파리의 월계수 가지가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의 머리는 몸의 다른 부분에 비하여 너무 커 보인다.
보티첼리는 신체 묘사에 대한 균형 잡힌 르네상스의 기법을 외면하고, 중요한 것을 크게 그리는 중세의 기법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가 르네상스 기법을 외면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149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사보나롤라의 종교개혁 물결에 반응한 것이다. 1493년에 보티첼리의 맏형 조반니가 별세했다. 그리고 나폴리에서 형 시모네가 피렌체로 돌아왔다.
보티첼리와 함께 살았던 시모네는 사보나롤라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당시 피렌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며 사보나롤라의 예언을 전파했다. 보티첼리가 사보나롤라의 열성 지지자였다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당시 피렌체의 분위기가 그의 그림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 참고문헌 )
o 바르바라 다임링 지음·이영주 옮김, 산드로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5
o 도미니크 티에보 · 장희숙 옮김, BOTTICELLI, 열화당, 1992
o 실비아 말라구치 지음 · 문경자 옮김,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7
o 키아라 바스타외 지음 · 김숙 옮김, 보티첼리, 예경,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