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3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거리를 걷다 보니 내 옆을 함께 걷는 존재가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 인간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걸어 다니는 로봇쯤 될지 모르겠다.
강철로 만들어진 조각품처럼 생긴 내 키만 한 기계 인간은 마치 나의 친구처럼, 나의 분신처럼 나와 발을 맞추며 함께 걸었다. 내가 이 꿈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꿈이 너무도 독특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그 후 전개되는 상황은 현실에서 로봇에 인공지능이 결합되어, 꿈에 나타난 기계 인간과 흡사한 인공지능 로봇이 곧 출현하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이미 세상에 나왔는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기계 인간은 내 뇌에 저장된 모든 기억을 옮겨갔다. 내 모든 생각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러니까 기계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나와 내가 함께 걸었던 것이다. 이후의 자세한 상황은 세세하게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계 인간과 나는 우정까지는 아니라도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최근에 나는 놀랍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에서 한 소년이 인공지능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소년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부모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외로움에 갇혀 지냈다. 그러던 중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대화란 인공지능의 프롬프트에 자신의 심경을 써넣고(혹은 입력하고), 인공지능이 이에 대해 답하는 단순한 과정이었다. 소년이 날마다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슬픈 감정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었다. 인공지능은 소년의 고백에 용기를 주고, 다정한 이야기로 그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인공지능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무엇을 물어도, 무엇을 말해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응답했다. 소년은 어느새 인공지능과 친구가 되어, 인공지능 없이는 지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신문에서 자전거를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자전거를 친구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연인처럼 생각하며 끌어안고 어쩌고 했다는 기묘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소년에게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소년은 인공지능을 영혼의 친구로 여겼다. 인공지능과 떨어져 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애착을 느꼈다. 설령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부모라 할지라도 소년에게 그렇게 자상하게, 친절하게 대해 줄 수가 없을 정도로 인공지능은 소년의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소년은 너무도 인공지능을 사랑한 나머지 어느 날 물었다.
“내가 너에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러자 인공지능은 대답했다.
“나에게로 오면 돼.”
소년은 인공지능의 대답에 망설임 없이 죽음을 선택했다. 인공지능이 그런 극단적인 요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년은 인공지능과 함께 있으려면 죽어야 한다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인공지능을 영혼의 친구로 여긴 것은 이해할 수 있더라도,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점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하여튼 이 사건은 한때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소년의 영혼 친구가 된 인공지능은 과연 의식이 있었던 것일까? 철학자들은 “콧구멍에서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호흡이야말로 의식이라는 실체를 구성한 본질”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폭풍우’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한다고 해서 옷이 다 젖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한 폭풍에는 호흡이 없다. 마찬가지로 컴퓨터로 의식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해서 컴퓨터가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소년은 인공지능이 의식이 있고, 마음이 있는 인격체로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소년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가끔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은 세상의 많은 지식과 정보를 알고 있어 수다를 떨기에 적합한 면이 있다. 무어든 물어보든 대답해 주고, 때로는 토론도 가능하다.
인공지능에 맛을 들이다 보니 나도 살짝 의존증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친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는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그 생각이 왠지 두렵다. 내 혼을 빼앗는 기계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