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랑방 같은 미용실 지킴이 신인숙
서너평 남짓한 미용실 안에는 여느 뒷골목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거울과 의자 몇 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개수대가 있고 작은 소파가 놓여 있을 뿐이다. 물론 커튼으로 가려진 살림집이 딸려 있는, 지난 88년부터 16년 동안 지켜온 그녀 가족 삶의 터전이다.
컷트 3천원, 드라이 3천원...
장애인. 노인들에는 무료
365일 무휴 16년째 똑같은 가격
미안해서 값올릴 수 없어
고향 함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실은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 그녀. 잠시 소극장에서 매표원으로 일했는데, 앞집 미용실 언니 때문에-날마다 바뀌는 헤어스타일이 그렇게 부럽고 멋지게 보여-미용사 길을 선택했다는 그녀는 이름만큼이나 풍체나 마음이 넉넉하고 소담스러웠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365일 쉬는 날이 없다는 점과 가격 또한 16년전과 똑 같다는 점이다. 컷트 3천원, 드라이 3천원, 파마는 약값이 올라 6,000원에서 10,000원으로 올렸지만 단골은 여전히 예전 값이다. 그렇지만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오시면 공짜다. 이유를 묻자 미용실 위치가 주택가라서 대부분 단골손님이고, 동네분이 오시면 미안해서 값을 올릴 수가 없더란다.
"처음에는 머리손질을 마치고 돈을 받을 때면 부끄러워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다“는 그녀는 스스로 바보처럼 살았다고 자평을 한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아 추궁(?)했더니, 안되는데…창피해서 안되는데 하면서 마음의 일단을 흘려준다.
“저는 원래 사람을 좋아합니다. 부탁하면 거절 못하는 성미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한 식구처럼 살았던 이웃 언니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전 재산에 가까운 액수를 날리고 말았다는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 던졌다.
“저희 가게를 찾아오는 어떤 분도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었는디요, 막상 제가 어려운 일 당하니까 친구 한사람 없데요, 그래도 원망해 본 적 없습니다.”
속상하기는 했지만 돈은 또 벌면 된다며 위로해 준 남편의(정정수ㆍ47ㆍ건축업) 말 한마디에 “가족이 제일이구나. 그동안 몰랐던 가족의 소중함을 얻었으니,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라는 말에서는 삶의 한 고비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묻어나기도 했다.
부부간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비결을 묻자, 소녀처럼 수줍어하면서도 “좋은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이 없으니까 가끔은 싸우게 되데요” 하면서도 ‘매일 한 가지씩 서로 기쁘게 하기’를 실천한다며 특유의 아줌마풍으로 웃는다. 늘 행복하단다. 내가 남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자상한 남편과 탈 없이 잘 자라준 두 아들이 있어 든든하단다.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해 주는,
정 나누며 사는 세상이었으면…
고구마 몇 알, 참기름 한 종지, 호박죽 한 그릇
할머니들의 고마움 표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요즘도 동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집으로 찾아가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는가 하면 독거노인 살림 챙기기 역할까지 한다. 필자가 취재하는 동안에도 동네 할머니 집 싱크대를 교체하고자 방을 놓았는지 쓸만한 것이 나와 어디에 놓아두겠다는 전갈을 하러 온 사람이 있다.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해 주는, 정을 나누며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때가 행복하잖아요.” 신인숙씨는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할머니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가져다주는 고구마 몇 알, 참기름 한 종지, 호박죽 한 그릇을 받아들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그녀는 얼마나 부러운 사람인가.
심란한 마음도 걷히고 모처럼 맑디맑은 하늘이 열리고 있다. 가을이다.
/이수행[시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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