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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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랑방 같은 미용실 지킴이 신인숙

▲ 미용실 지킴이 신인숙씨의 미용실 ⓒ김태성 기자 말하기는 쉬워도 배우기는 어렵고, 배우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더 어렵고, 실천한다 할지라도 깨닫기는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배웠다 할지라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것은 분별심이 약한 탓인데, 이는 그 배움이 깊지 못하고 껍데기만 달궈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배우지 않은 것만 못한 이유는 그 뜨거운 열에 많은 사람이 데거나 다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범부도 그러할진대 공인이라면, 지도자라면 가히 그 나라와 백성을 망치게 하는 대 화근이 아닐 수 없다. 공자님 말씀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저 유명한 ‘다모클레스의 칼’이란 속담처럼 절박한 순간이 아닌가. 필자의 과민 탓인지 모르겠으나, 언제 떨어져 머리통에 꽂힐지 모르는 칼날 밑에 있는 줄은 모르고 자신들의 야욕과 안위에만 급급한 파당이 그렇고, 한 치의 양보도 모르는 노사(勞使)가 그러하다. 또한 감정에 휩싸인 채 끊임없이 분열을 부추기는 언론, 토호와 기득권층이 벌이는 끝나지 않는 쌈박질의 원인도 껍데기만 달구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일까. 눈이 없고 귀가 없는 세상이라지만 한마디만 하자. 이르기를 ‘大廈天間夜臥八尺이요, 良田萬頃一食二升 이니라’ 했느니, ‘천 칸이나 되는 큰 집을 가지고 있어도 밤에 누워 잘 때는 8자(240센티)면 족하고, 만 이랑이나 되는 좋은 밭이 있다 해도 하루를 먹는데 필요한 양식은 두되면 족하다’는 말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를 깊이 배우시라.
그리하여 이번 여행은 비록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했어도, 삶 속에서 스스로 체득한 것을 실천하는, 참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 나누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사는 이름 없는 한 민초의 들창을 찾아갔다. 신인숙씨(申仁淑ㆍ여ㆍ45ㆍ유림헤어살롱 대표)가 운영하는 미용실이다.

서너평 남짓한 미용실 안에는 여느 뒷골목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거울과 의자 몇 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개수대가 있고 작은 소파가 놓여 있을 뿐이다. 물론 커튼으로 가려진 살림집이 딸려 있는, 지난 88년부터 16년 동안 지켜온 그녀 가족 삶의 터전이다.

컷트 3천원, 드라이 3천원...
장애인. 노인들에는 무료
365일 무휴 16년째 똑같은 가격
미안해서 값올릴 수 없어


고향 함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실은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 그녀. 잠시 소극장에서 매표원으로 일했는데, 앞집 미용실 언니 때문에-날마다 바뀌는 헤어스타일이 그렇게 부럽고 멋지게 보여-미용사 길을 선택했다는 그녀는 이름만큼이나 풍체나 마음이 넉넉하고 소담스러웠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365일 쉬는 날이 없다는 점과 가격 또한 16년전과 똑 같다는 점이다. 컷트 3천원, 드라이 3천원, 파마는 약값이 올라 6,000원에서 10,000원으로 올렸지만 단골은 여전히 예전 값이다. 그렇지만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오시면 공짜다. 이유를 묻자 미용실 위치가 주택가라서 대부분 단골손님이고, 동네분이 오시면 미안해서 값을 올릴 수가 없더란다.

"처음에는 머리손질을 마치고 돈을 받을 때면 부끄러워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다“는 그녀는 스스로 바보처럼 살았다고 자평을 한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아 추궁(?)했더니, 안되는데…창피해서 안되는데 하면서 마음의 일단을 흘려준다.

“저는 원래 사람을 좋아합니다. 부탁하면 거절 못하는 성미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한 식구처럼 살았던 이웃 언니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전 재산에 가까운 액수를 날리고 말았다는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 던졌다.

“저희 가게를 찾아오는 어떤 분도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었는디요, 막상 제가 어려운 일 당하니까 친구 한사람 없데요, 그래도 원망해 본 적 없습니다.”

속상하기는 했지만 돈은 또 벌면 된다며 위로해 준 남편의(정정수ㆍ47ㆍ건축업) 말 한마디에 “가족이 제일이구나. 그동안 몰랐던 가족의 소중함을 얻었으니,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라는 말에서는 삶의 한 고비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묻어나기도 했다.


   
“사실 그 일이 있고난 후 지난 5년 동안 하루도 외출해 본적이 없습니다. 온 식구가 근검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뱄구요” 라고 말하는 그녀는 빚지고는 못사는 성미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증빚을 갚아 나가는 중이란다.

부부간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비결을 묻자, 소녀처럼 수줍어하면서도 “좋은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이 없으니까 가끔은 싸우게 되데요” 하면서도 ‘매일 한 가지씩 서로 기쁘게 하기’를 실천한다며 특유의 아줌마풍으로 웃는다. 늘 행복하단다. 내가 남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자상한 남편과 탈 없이 잘 자라준 두 아들이 있어 든든하단다.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해 주는,
정 나누며 사는 세상이었으면…
고구마 몇 알, 참기름 한 종지, 호박죽 한 그릇
할머니들의 고마움 표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요즘도 동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집으로 찾아가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는가 하면 독거노인 살림 챙기기 역할까지 한다. 필자가 취재하는 동안에도 동네 할머니 집 싱크대를 교체하고자 방을 놓았는지 쓸만한 것이 나와 어디에 놓아두겠다는 전갈을 하러 온 사람이 있다.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해 주는, 정을 나누며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때가 행복하잖아요.” 신인숙씨는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할머니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가져다주는 고구마 몇 알, 참기름 한 종지, 호박죽 한 그릇을 받아들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그녀는 얼마나 부러운 사람인가.

심란한 마음도 걷히고 모처럼 맑디맑은 하늘이 열리고 있다. 가을이다.

/이수행[시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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