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바다가 그린 수채화
진달래와 바다가 그린 수채화
  • 장갑수
  • 승인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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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의 아름다운산행]영취산(510m, 전라남도 여수)

지천에 핀 봄꽃들이 눈부신 햇살을 받아 화사하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너머로 꽃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도로변에서는 왕벚꽃이 화려함을 뽐내고, 산비탈에서는 산벚꽃이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다. 양지바른 밭에 핀 분홍색 복사꽃은 우아하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진달래다. 산비탈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진달래가 연분홍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봄은 무르익을 대로 익는다. 

붉은 색을 띤 영취산 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복숭아밭에 은은하게 핀 복사꽃이 우리 식구를 맞이한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너머로 바다가 출렁인다. 진달래에 물든 바다물결은 이미 붉은 색으로 변하였다.

암회색 바위와 붉은 진달래의 조화

▲ 여수 영취산 정상 가는 길 ⓒ장갑수 450봉에서 정상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과 사람의 움직임이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남쪽은 바위들이 벼랑을 이루고, 북쪽에서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의 곡선미에 암회색 바위와 붉은 진달래가 색상의 대비를 이루면서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정상에 올라서자 흥국사가 내려 보인다. 온 산을 붉게 채색한 진달래는 정숙하고 해맑은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이미지다. 정상에 서서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 그리고 주변의 산과 여천공단을 바라본다. ▲ 영취산 봉 진달래 군락 ⓒ장갑수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바위 아래에 아슬아슬하게 둥지를 튼 암자가 있다. 도솔암이다. 도솔암으로 들어서는데 시누대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염불을 한다. 등산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암자는 고요하고 그윽하다. 영취산 9부 능선에 자리 잡은 도솔암에 들어서니 본사인 흥국사가 내려 보이고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너머로 푸른 바다가 신선하다. 암자를 둘러싼 아기자기한 바위들은 이미 득도한 보살이다. 

진달래가 물들인 405봉의 풍광이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경사를 이룬 비탈에 붉은 물감을 툭툭 뿌려놓은 듯한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진달래 군락 사이사이에는 무뚝뚝한 바위들이 자리 잡아 진달래의 붉은 색상을 돋보이게 한다. 진달래에 취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또한 꽃물결의 일원이 된다.

우리는 405봉으로 통하는 진달래꽃밭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다. 무뚝뚝한 바위들도 부드럽고 예쁜 진달래와 함께 춤추는 무희가 되었다. 진달래 꽃밭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부르는 노래는 꽃 속의 가족음악회다.

청정공간으로 남아있는 흥국사

▲ 영취산 흥국사 대웅전 ⓒ장갑수 산줄기는 439봉으로 가면서 점차 숲길로 바뀐다. 439봉에서 흥국사로 내려간다. 막 싹을 틔운 활엽수의 새잎이 신비롭고 귀엽다. 이 때의 산 빛깔은 꽃보다 아름답다. 갖가지 색상으로 산비탈을 장식하고 있는 연잎이 날마다 변하면서 4월을 싱싱하게 수놓는다. 전망대바위에서 흥국사를 내려본다. 질서정연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절 지붕들이 정갈하다. 흥국사로 들어서는 하얀 벚꽃길이 나그네를 부처의 길로 인도한다. 천왕문과 봉황루, 법왕문을 지나자 대웅전(보물 제369호)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붕긋한 산봉우리가 부처의 육계 같다. 정면3칸 측면3칸에 다포계 팔작지붕을 한 대웅전은 축대 위에 높은 기둥을 사용하여 훤칠하면서도 장중하다. ▲ 영취산 봉오름 진달래 군락 ⓒ장갑수
돌기둥 아래에 천진한 표정을 한 거북이받침의 석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부처님 뒤에 걸어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에 눈길이 멈춰진다. 석가여래가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에 있었던 영취산에서 법회를 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다. 대웅전 뒤로는 불조전, 팔상전, 응진전을 배치하고 옆으로 무사전을 앉혀 규모가 제법 큰 가람이 되었다. 

여천공단에서 뿜어내는 각종 공해 속에서도 청정한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는 흥국사는 매연에 찌들려 사는 이 지역사람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한다. 천왕문을 벗어나자 화사한 벚꽃이 일주문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일주문 앞 계곡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지개다리가 있다. 반원을 그린 무지개다리는 언제 보아도 그 솜씨가 정성스럽고, 그 모습이 우아하다.
  “아빠, 얼른 가요.”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발길을 돌린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상암초등학교(50분) → 450봉(30분) → 정상(20분) → 봉우재(40분) → 439봉(40분) → 흥국사 (총소요시간 : 3시간)
 -. 제2코스 : 예비군훈련장(40분) → 450봉(30분) → 정상(20분) → 봉우재(40분) → 439봉(20분) → 절고개(50분) → 호랑산(20분) → 여도초등학교 (총소요시간 : 3시간 40분)

*가는 길
  호남-남해고속도로 순천교차로에서 17번 국도 여수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여천공단 입구인 석천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5분 정도 달리면 둔덕삼거리가 나온다. 흥국사는 석천사거리에서, 상암초등학교는 둔덕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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