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호남소외론’이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호남소외론’ ‘호남푸대접론’ 등의 단어들을
접하면 솔직히 만감이 교차한다.
왜냐하면 과거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치하에서 만들어졌던 단어가 세계화·개방화·정보화 시대에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이다.
사실, 호남지역은 97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해방 이후 50여년동안 단 한번도 집권세력으로 자리한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개발독재로 인해 지역개발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돼 왔다.
그러나 이제 호남지역은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모태로서 국민의 정부에 이어 명실상부한 집권세력이다.
국정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집권세력으로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운영의 주체가 ‘소외되고’ ‘푸대접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이다. 스스로 힘으로 낙후된 지역문제를 풀면 될 일이지 누구에게 하소연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호남소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참여정부 인사에서 소외와 지역개발 미흡 등을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과연 이런 주장은 사실인가?
참여정부 인사에서 호남은 소외되고 있나. 참여정부는 90%가
넘는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속에서 탄생했다. ‘02년 대선에서 광주·전남·전북은 투표자 298만명 가운데 92.3%인 275만명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제17대 총선 직후 치러진 6·5재보선 선거 국면에서 신일순 대장 예편 문제와 함께 편중인사 시비가 계속되면서 이후 지역여론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최근 청와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49년 인구대비 기준을 적용했을 때, 정부 정무직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원 비중에 있어서 호남출신 인사의 경우 과다대표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여정부 정무직 220명중 호남출신은 62명(28.1%)으로
1949년 인구비율(호남비중 25.2%)대비 2.9%P가 과다대표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산하기관장과 감사의 경우 총 276명중 호남출신은 78명(28.3%)으로 3.1%P가 과다대표 되고 있었다.
다만, 청와대 정책실 수석비서관 및 비서관 13명중 9명이 영남출신이고, 2명이 호남출신이어서 정부정책 입안 및 검토 과정에서 호남이 홀대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낼만할 소지는 있었다.
최근, 청와대는 일부 정책라인의 비서관급 인사가 특정지역에 편중된 것에 대해 향후 지속적으로 시정조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호남소외론’의 진원지인 청와대 일부 정책라인에 대한 지역편중 인사는 조만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낙후된 지역개발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
그동안 참여정부는 호남발전을 위해 문화중심도시, 광산업육성, S-프로젝트 등 많은 일을 추진해 왔다.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는 향후 10년 동안 2조원이 투입된다. 광산업 2단계 사업에는 4천억원이 투입되고, 부산 지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양항은 당초 계획대로 개발될 예정이다.
또한, 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호남지역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왔다. 낙후된 호남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서남해안 개발사업인 ‘S-프로젝트’ 추진을 지시했고, 이해찬 총리가 “경제성이 없다”고 반대의 뜻을 밝혔던 호남고속철도의 경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단순히 경제성만 강조하는 타당성 조사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개선 방안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제 시대도, 사람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최고 통치자가 지역을 돌며 마치
시혜를 베풀듯이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지역개발을 약속했다. 하지만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의 지역개발’은 늘 미봉책으로 끝나서
오히려 그 결과가 좋지 못했다.
지역개발을 지역주의 혹은 지역정서에 기대어 이루려는 것은 구시대 방식이다. 이른바 실세를 통해서 최고 통치자에게 의견을 전달해 지역개발을 이루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참여정부 국정의 패러다임과 운영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은 최고 통치자 1인의 결단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고 실행되는 방식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청와대가 국정방향을 제시하고, 해당 위원회에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면, 내각이 단기과제와 정책현안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정운영시스템에서는 구조적으로 특정 지역을 우대하거나 차별하는 정책을 입안할 수도, 결정할 수도, 이루어질 수도 없다. 최고 통치자가 일방적인 지시를 통해 특정 지역을 개발하라는 조처를 취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결국, 변화된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과 현재의 국정운영 시스템과 맞는 방식으로 발상을 전환하고, 이를 통해 지역개발 방안을 마련해야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역정서에 기대어 대통령에게 지역개발 약속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 내부의 공론화 작업을 거쳐,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한 행정부를 설득할 수 있고, 나아가 야당과 언론을 설득할 수 있는 지역개발 명분과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들을 설득해서 국민적 여론을 모으는데 성공했을 때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광주시와 전남도에서 명분과 논리가 뚜렷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담긴 사업계획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이 안을 가지고 당·정·청을 비롯한 참여정부 국정운영 시스템을 다각도로 공략해서 지역발전 계획안을 국정운영에 반영토록 하면 된다.
따라서, 지역에서 대통령에게 “무조건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지역 스스로 발전 전략을 세워서 무엇이 필요한지 대통령과 정부에 정확하게 요구해야 한다.
호남과 참여정부의 ‘차이’ 극복해야
참여정부는 국정운영 과정을 시스템화하고, 모든 사안에 대해서 전체적·근본적으로 접근해서, 중장기적 계획에 따라 로드맵을 만들어 속도감 있게 ‘디지털식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호남지역의 민심은 아직도 ‘아날로그 문화’에 더 익숙한 것 같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아날로그 문화는 속도에 다소 둔감하고, ‘인간다움’을 강조하고, 타인이 보여주는 진심에 쉽게 감동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사 문제가 호남지역민에게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참여정부의 ‘디지털’ 문화와 호남지역의 ‘아날로그’ 문화가 ‘코드’가 맞지 않은 상황에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일부 세력들이 이 간극을 파고들어 부추김으로써 지역여론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참여정부의 ‘호남소외론’은 그 실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에 입각하지 못한 ‘구시대 정치세력’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 호남지역민 모두의 성찰이 필요할 때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철하게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 생산적 복지, 정보통신 등 핵심 개념을 이름만 바꿔서 승계했다. 때문에 참여정부의 성공은 크게 보면 국민의 정부의 성공이고, 호남의 성공인 것이다.
현재 참여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국정운영의 화두는 지역간 균형발전이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은 헌정사 60년 동안 어떤 정부도 어느 대통령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행복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만난을 무릅쓰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온갖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지역의 발전과 역사의 일보전진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대통령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바뀐
시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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