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서 비극으로’
‘동화에서 비극으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1.3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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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경의 심야영화를보다]<스위니 토드, Sweeney Todd>

▲ 영화 포스터.
영화 : 스위니 토드, Sweeney Todd
감독 : 팀 버튼
주연 :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앨런 릭맨


세월은 인간의 튀는 기발함을 빼앗아 가는 대신에 차분한 깊이를 주는 것 같다. 나이가 쌓여감에 따라 몸이 느려진다. 더불어 생각도 넓어지기에 느려진다. 때문에 느려지는 만큼 깊어진다. 문득 악동이 나이를 먹으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악동의 이미지를 간직한 50대 전후의 중년.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시다면 연락 바란다. 뵙고 싶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냉철한 현실 분석력을 함께 가지고 계시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아이의 상상력과 냉철한 현실 분석력을 동시에 가진 50대 중년 팀 버튼. 악동의 이미지를 떠올려도 좋다. 기발함으로 반짝거리면서도, 불합리한 현실에 쓴소리를 잃지 않는 독특함이 팀 버튼의 스타일이다. 관객들은 그의 스타일에서 판타지의 낭만과 현실에 대한 촌철살인의 비평을 동시에 전달받는다.

어른용 동화를 만들어오던 그가 이번에는 어른용 비극, <스위니 토드>를 만들었다. 완전한 행복 속에서 사는 이발사 윌리엄(조니 뎁 분)은 윌리엄의 아내를 탐하려는 터빈 판사(앨런 릭맨 분)의 질투로 누명을 쓰고, 15년간 감옥에서 복역한다. 탈옥하여 런던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죽었다고 하고, 젖먹이 딸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윌리엄은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꾸고, 복수의 화신이 된다. 복수는 분별력이 없다. 죽은 줄 알았지만 살아있던 아내도 죽이고, 딸을 찾을 여유도 필요도 복수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결국 스위니 토드도 죽임을 당하며 영화는 끝난다. 한마디로 ‘복수로 꽉찬 정신의 획일성이 부르는 비극’이라 말할 수 있다.

과거작품 <가위손>(1990년)과 유사성을 찾으려는 생각은 부질없었다. 고딕풍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은 그대로였지만 분위기와 내용은 완전히 새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의 측면만 보자면 팀 버튼 스타일의 전환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히려 감독과 주연은 바뀌지 않고 정반대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탐구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스위니 토드>을 통해 <가위손>을 연상한 것은 아마도 직업적 유사성(미용사/이발사)이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가위손>의 에드워드(조니 뎁 분)는 기쁘게 하려고 손(가위)을 사용하고, 스위니 토드는 죽이기 위해서 연장(면도칼)을 든다. 두 날이 겹쳐야 제대로 작동하는 가위는 상호적이고, 한 날만으로도 기능하는 칼은 일방적이다. 기쁨은 상호적이고, 살인은 일방적인 성격이 있다. 일방성의 파국은 비극과 잘 어울린다.

이외에 <가위손>과 <스위니 토드>의 대비되는 비교목록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로맨틱한 눈(雪)-끈적한 피(血), 대사중심전개-노래중심전개(뮤지컬), 청소년이야기-어른이야기, 미국-영국(공간적 배경), 컬러-흑백(화면), 육체적 장애(가위손)-정신적 장애(복수심), 순수-복수, 가족없음-가족있음…. 관람시 참조하시라.

같은 감독과 배우가 만든 영화지만 수많은 대비들로 가득하다. 이번까지 여섯 차례 팀 버튼과 조니 뎁은 짝을 이뤄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감독과 주연이 같다는 이유로 <가위손>과 <스위니 토드>를 수평 비교하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를 보면서 <가위손>의 장면이 계속 오버랩 되는 것은 필자의 한계나 취향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강렬하다. 감독의 의도로 해석해 본다. 강한 대비가 더욱 끈끈하게 두 영화를 연결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팀 버튼은 새로운 스타일을 자신의 페르소나이자 가장 강력한 조력자와 함께 창조해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냈던 세계가 낭만의 세계였다면, 이제는 비극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예고편이 <스위니 토드>가 아닐까? 이유야 어떻든 확실한 것은 <스위니 토드>에서 셰익스피어의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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