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의 유럽 여행길에서 만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노래로만 흥얼거리던 다뉴브 강의 뱃놀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욕과 나폴레옹의 애환이 교차하는 쉘부른 궁전 산책,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는 슈테판 성당의 광장에서는 비엔나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했다.
평생의 호사를 누렸던 그 추억과 낭만의 그림은 지금도 어디론가 금세 떠나고 싶은 나그네의 충동을 준다.
슈테판 성당의 광장에서 남쪽으로 쭉 가면 베네치아라고 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필자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날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라는 옛 시조를 흥얼거리며, 그 남쪽 길을 한동안 걸어보았다.
베네치아 하면 ‘베니스의 상인’이 생각난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것은 그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어디 먼 곳, 딴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요즈음 신문, TV 뉴스에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사람들을 그 희곡 속에 넣어보라. 바로 오늘 우리 사회가 살아 움직이는 한 편의 연극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한없는 동경의 대상인 베네치아에 가보고 싶었던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고 나서다. 손바닥 만한 베네치아가 열강과의 갈등 속에서 번영을 누린 과정은 결코 남의 나라 얘기, 옛날의 일이 아니라 생생한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외교정책, 기업 산업정책, 교육 문화에 대한 식견을 숨 막히는 현실감으로 받아들였으면 싶어서다.
국가는 망해도 민족은 영원하다. 한낱 부귀와 권력에 눈이 멀어, 후손에게 빌려 살아가는 이 땅의 자연과 생명체를 훼손시키는 오늘의 인간들은 베네치아의 처절할 만큼 투철한 역사관과 애민관을 본받았으면 한다.
잘난척하는 우리가 사라져도 역사는 흐르고, 태양은 뜬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 부디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우리가 되었으면 싶다. ‘파헤쳐진 나라 한국의 이야기’가 훗날 얘기책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