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
어린이날이었다. 평소 함께해주지 못해 아이들과 온종일 보낼 심산이었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오전 반나절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자기 만들기를 하고 화순 온천에 접해있는 불지사를 들렀다.
속가에서 정세현이라 불리웠던 범능스님이 좌정해 계신 곳이다. 차 한 잔 나누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아이들은 결국 엄마 손에 맡겨두고 길을 나섰다. 거북선축제가 열리는 여수에 가야할 시간이 된 것이다. 가족들은 내가 길을 떠나게 되면 그것이 놀이가 아니라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함께 하지 않는다.
나의 여행은 늘 일과 놀이 사이에서 어느 축에도 끼지 못하고 방황을 한다. 하여튼 가까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갈 거리는 아닌 여수행은 어린이날에다 축제까지 겹쳤으니 그 얼마나 혼잡할까 이미 짐작이 갔다.
자라목 같은 여수의 초입에 들어서니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세상의 교통망이 사통팔달로 뿜어져 나가지만 반도처럼 바다로 깊숙이 뻗어 나간 곳에서는 별반 소용없는 일이다. 몇 해 전 꽃박람회를 했던 안면도에서 일어난 교통체증은 이미 그 상황을 여실히 증명해 준 일이었다.
그곳에서 여수해양엑스포를 한다니 과연 저 관절 없는 차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대뜸 걱정부터 인다. 시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권면하고 차량 5부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 성 싶다.
임란당시의 수군들의 활약상과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왜군과 비교를 해두어 이해하는데 무척 용이한 시설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진남관의 커다란 현판이 땅을 누르고 있다. 누를 진자에 남녘 남, 조용한 조선의 바다를 침범해 왔던 남녘의 왜적들을 진압하고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정신이 집 이름에 새겨 있는 것이다.
진남관에서 보이는 장군도와 돌산대교를 둘러보고 새롭게 조성된 이순신광장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평양예술단이 공연을 하고 있는데 사회자의 언어가 공영방송에서 보던 북쪽 언어보다 더욱 심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지닌 정체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만이 생존의 비법임을 알아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휘파람이라는 노래가 나오니 몇몇 청중은 어깨춤을 들썩인다. 민족의 동질성은 이렇듯 가까이 접하면서 회복되는 것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증명되는데 오늘의 위정자들에게는 만남 보다는 폼 잡는데 모든 품을 다 팔아버리고 있으니 임진강의 코스모스가 얼마나 더 피고 져야 하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객석이 무척 소란해진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몸짓에 사회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주변을 더욱 긴장 시킨다. “안전 요원들 지금 의자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 의자 뺏어 버려요”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바다가 있는 항구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일흔에 가까우신 추진위원장이 예순댓살이 되신 부위원장에게 “아야. 손님들 잘 모셔라 잉!”, “예. 걱정 마쇼”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데 놀랐던 기억이 아직 쟁쟁하다.
이런 체계들이 건강하게 통하면 지역의 발전에 자양분이 되지만 불통하면 변치 않는 권력의 화신으로 자리 잡고 지역은 정체되기 마련이다. 지금 어느 쪽일까는 현지사람들과의 대화 몇 마디면 알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서는 아직 미흡하다는 쪽이 더 많아 보인다.
자리를 좌수영 대첩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 무대가 내려 보이고 불꽃놀이가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밤이 깊어지고 이탈리아와 일본, 독일에서 온 불꽃 경연대회 참가자들의 향연이 벌어졌다.
5월, 곳곳에서 축제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그 축제에 한번 가볼 일이다. 보여주기 위한 행사와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행사의 간극은 아직도 머나먼 이 땅의 축제현장을 경험하며 가슴이 먹먹해 질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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