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빈곤해진 사회
언어가 빈곤해진 사회
  • 나윤수/ 컬럼니스트
  • 승인 2013.09.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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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윤수 칼럼니스트

말을 마구 토해 내는 시대에 살다보니 왠지 불안해진다. 연초에는 북한의 섬뜩한 전쟁 선포로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더니 최근에는 통합 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 공방이 살벌하다.
“적들을 다 쓸어버리라”는 북한 최고 존엄의 협박에 시달린 지가 얹그제 인데 “이제는 총기를 탈취해 통신시설 습격...압력 밥솥 폭탄 매뉴얼”운운 하는 것도 살벌한 언어이기는 마찬가지다.
기다렸다는 듯 진보와 보수 단체는 또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 이런 마당에 새가슴 같은 필자는 걱정이 앞선다. “서로 민주주의 한다면서 아름다운 말 놔두고 왜들 이렇게 싸우나” 하는 생각이다. 저렇게들 사생결단 싸우는 데서 아름다운 우리 말이 설자리는 없다. 살벌한 말싸움에 격조 높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먼 나라 얘기가 됐다.
죽기 아니면 살기인 판에 무슨 한가한 소린가 할지 모르지만 이 가을에는 듣기 싫은 소리 안 들었으면 싶다. 하도 언어 폭력에 시달리다 보니 구수한 우리말에 사람의 심성을 밝고 맑게 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런 소박한 바램은 TV 에서도 여지없이 무너진다. 방송 언어도 보면 쓰는 단어가 자극적이다 못해 천박하다는 생각이다. 일부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얘들 장난 같은 수준의 국적 미상의 단어들이 난무해 저걸 어린이들이 봐도 되나 싶을 정도다.
가수들 노래는 또 어떤가. 따라 부르기도 어려운 영어 노래가 대세다. 글로벌 시대라서 그런가 하지만 이 나라의 모국어는 처량한 신세다. 싸이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싸이는 떴을지 모르나 우리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고유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어가 빈약하다는 것은 생각이 짧다는 것이다. 생각이 짧은 데 좋은 사상이 나올 수 없다. 폭력으로 사상을 실천하려는 부류나 그걸 척결하겠다고 달려드는 부류나 격은 좀 지켰으면 싶다.
지금이야 말로 수 천년 지켜온 한국어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UN의 경고를 새겨들을 때다. 양 극단이 대립할 때 사람 냄새나는 언어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지만 듣기 싫은 소리 듣지 않을 자유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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