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여야 부딪치는 일이 없습니다
고개를 숙여야 부딪치는 일이 없습니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4.10.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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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맹사성(1360~1438)은 오늘날 공직자들의 귀감인 조선의 청백리이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장군의 손녀 사위이기도 한 그는 세종 임금 때에 황희 정승과 함께 쌍벽을 이루었다.

맹사성은 그의 호 고불(古佛)처럼 허리가 구부정하고 마치 촌로같이 소타고 피리불고 다니는 소탈한 재상이었다. 이러한 맹사성이었지만 그도 젊었을 때는 거만한 관리였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가 열아홉 젊은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파주군수가 되었는데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는 어느 날 고을에서 유명하다는 고승을 찾아가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할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그야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이에 맹사성은 “그런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 아닙니까? 모처럼 찾아온 나에게 고작 이런 말 밖에 해줄 말이 없습니까?” 라고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고승은 그에게 먼 길을 왔으니 차나 한잔 하라고 붙잡았다. 그러자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고승은 찻잔에 찻물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흥건해졌습니다. 그만 따르시지요.”

맹사성이 소리쳤지만 스님은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다. 이윽고 고승은 잔뜩 화난 맹사성을 보고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아시면서, 재주가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모르시나이까?”

스님의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데 그만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고승은 웃으면서 말했다.

“고개를 낮추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이 일화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19세에 장원 급제하지 않고 27세에 급제하였다. 아무튼 이 인터넷 일화에 의하면 맹사성은 이후 겸손하였고 정승이라는 최고 반열에 올랐을 때에도 소탈하였다고 한다.

우의정 시절에 그는 충청도 온양으로 부친을 뵈러 갈 때 관아에 들리지도 않고 하인 한 명만 데리고 다녔다. 언제인가 한 번은 양성과 진위 현감이 맹사성이 고향에 내려간다는 말을 듣고 장호원에서 기다리다가 웬 사람이 소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아전을 시켜 물러나라고 하였다.

맹사성은 그 아전에게 “온양 맹고불이라도 하여라.”하니 아전이 그대로 보고하였다. 두 현감은 너무 당황하여 황급히 도망가다가 인수(印綬 관인)가 옆 연못에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 연못을 인침연 印沈淵이라 불렀다고 한다.

요즘 대리운전기사 폭행사건과 관련하여 모 국회의원의 갑질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란 말이 유행이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사건의 단초는 모 국회의원이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 국회의원은 30분 가까이 기다리다가 운전을 못하겠다며 떠나려는 기사에게 "몇 분도 못 기다려?"라고 했다 한다.

또 기사가 누구냐고 묻지도 않는데 먼저 국회의원 명함을 건넸고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언론은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하는 국회의원이 특권의식에 젖어 있다고 질타하고 있다.

국회의원께서 조금만 현명하고 겸손하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공인은 스스로 겸허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국회의원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 누군데” 하면, 시민들은 “그래, 어쩌라고” 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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