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은 경제력이 약한 지역에는 불리하다는 염려는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세금을 거둘 기반이 취약하면 지방재정 역시 당연히 부실하여 지역격차가 심화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앙집권의 폐해는 그러한 염려를 뒤덮고도 남아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 개혁을 본격화하였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연방수준의 지방분권이 언급될 정도로 지방분권이 대세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지방소멸론이 부상하면서 지방분권이 되려 지방소멸을 부추긴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지방분권의 지역격차확대론을 재탕하면서 소멸하는 지역을 모두 살릴 수는 없으니 행정구역을 조정해서 적정한 규모로 만들어야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만일 지방분권을 실시하면 지자체들의 반대로 행정구역조정을 통한 균형발전이 불가하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행정구역의 재조정만이 균형발전을 담보한다는 주장은 다른 모든 균형발전 노력을 무효화시키고 조롱하고 있다. 혹여 행정구역의 재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균형발전 정책의 패키지 중 하나일 뿐이다. 지방분권을 먼저 실시하면 지자체가 행정구역조정을 반대한다는 말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종류의 반대는 분권의 정도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주장들을 묵인하면 지방분권 망국론이 힘을 얻는다. 모처럼 지방분권이 대세가 되었으나 지방분권개헌 좌초 등으로 힘겨운 시절에 부각되는 지방분권 망국론은 결국 지방분권의 물결을 중앙집권으로 다시 되돌려 놓을 우려가 짙다.
그러니 지방분권 망국론자들의 주장에서 파생되는 몇 가지 의문을 점검해야 한다. 지방분권은 진실로 지역격차를 확대하고 취약지역의 소멸을 초래하는가? 지방분권을 포기하면 지역격차는 줄어드는가? 만일 그렇다면 지방분권은 포기해야 하나? 지방분권은 지역이 충분히 발전한 이후에만 가능한가? 지방분권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
지방분권에 대한 근원적 문제부터 보자. 중앙집권체제에서 지방은 중앙의 지배를 받는다. 한 국가의 의사결정을 하는 주인이 중앙이다. 하지만 지방은 인간이 사는 기초단위다. 주민에게는 주민의 권리가 있고, 주민이 모인 지역사회에는 지역사회의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행사해야 민주주의가 실천된다. 중앙에 모든 권리가 있는 상황이라면 주민인들, 지역사회인들 무슨 권리를 어떻게 행사하나? 중앙집권은 곧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그래도 되나? 주민도 지역사회도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의사결정의 주인이어야 한다. 지방분권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지방분권의 세상에서는 중앙이 지방을 지배하는 관계에서 중앙과 지방이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협력을 하는 관계로 전환되고 민주주의가 실천된다. 그러니 그 어떤 경우에도 지방분권은 포기할 수 없다.
지방분권과 지역격차확대의 문제로 들어가자. 지방분권 망국론자들은 생산성에 대한 고려를 망각한 듯하다. 수도권의 과밀로 이미 생산성이 하락하고 있으니 수도권에 국가의 자원을 더 이상 투자하면 그 효과가 낮다. 반면 비수도권은 투자에 대한 생산성이 수도권보다 높으니 앞으로는 비수도권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균형발전 정책은 바로 이런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지방이 균형발전 정책으로 아무리 투자를 받은들 그 투자의 방향, 내용, 집행에 대한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면 생산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분권 없는 균형발전정책은 허무한 것이다. 결국, 취약한 지역일수록 균형발전 정책을 시행할 때 지방분권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마지막으로 지역소멸의 문제는 국가의 운영철학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세상은 시간, 공간 그리고 물적 제약을 받는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 우선순위에 따라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의 운영주체를 중앙정부로 하면 국가의 우선순위에 따라 버릴 공간은 변방인 지방이 될 수밖에 없다. 소멸지역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가의 운영주체를 여럿으로 하면, 즉 지방분권을 시행하면 각 지역 마다의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남는 공간이 반드시 존재한다. 지방분권은 지역소멸을 촉진하지 않고 오히려 지역의 존속을 보장한다. 관건은 중앙을 중심으로 소멸지역을 방치할 것이냐, 아니면 각 지방을 중심으로 지역을 살릴 것이냐의 두 갈래 길 중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지 여부다. 소멸위험 지역의 운명은 국가의 운영철학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