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죄'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피의사실 공표죄'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 김홍재 기자
  • 승인 2019.09.19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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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위축' 우려 오래전 검찰, 경찰의 훈령으로 예외 규정둬 공표 사실상 사문화
워싱턴포스트지, 현직 닉슨 대통령 피의사실 기사화 '국민의 알권리충족'이 우선
'실체적 진실' 공익에 훼손되는 말 법무부 자제해야, 2천명 교수, 학생 시국선언
김홍재 취재본부장

1972년 6월, 워싱턴의 워터게이드 건물엔 미국 민주당 사무실이 있었고 어느 좀도둑들이 이곳을 털려다 경비원에 붙잡혀 경찰에 넘겨 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뒤 닉슨 대통령은 37대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탄핵을 당하게 됐다.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 걸까.

절도사건 2년후 워싱턴포스트 어느 기자가 그 건물 침입자들이 닉슨의 사주를 받은 CIA, FBI 요원으로 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전략을 알아내기 위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들킨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물론 그런 흑막이 감춰진 채 닉슨은 대통령에 재선됐고 대통령직을 훌륭하게 수행중이었다.

기자가 가지고 간 특종 기사를 보고 데스크와 편집국장, 편집위원과 사장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대는 현직 대통령인데다, 정확한 증거와 팩트 없이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여기다 닉슨은 전형적인 반공주의자이고 때마침 공산주의 국가들과 이념적 대립이 심화된 상황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비위사실을 기사화 했을 경우 상상을 초월한 대혼란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닉슨 대통령‘ 민주당 건물에 도청장치, 불법선거 의혹’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보도됐고 워싱턴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신문사는 “국민의 알권리‘는 민주주의 최고의 가치이며 그 어떤 것도 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닉슨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와 이와 관련된 요원들, 국세청 간부 경찰까지 연루된 거대 조직의 소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 기사로 인해 현역 미국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렸고 급기야 닉슨 스스로 하야하는 급반전이 이뤄졌으며 정치권 판도가 급변하게 됐다.

워싱턴포스트 사장이 이로인해 헤아릴 수 없이 국회 청문회에 서게 됐음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백악관에선 명예훼손과 피의사실 공표 등 죄로 검찰수사를 의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헤아릴 수 없는 협박이 계속됐고 닉슨 지지자들은 신문사에 몰려가 기물을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연일 후속 기사를 냈다.

결국 권력이 국민앞에 무릎을 꿇었다.

요즘 때아닌 ’피의사실 공표죄‘라는 말이 나 돈다.

다름 아닌 조국 법무장관 딸의 연구논문 1저자 의혹과 표창장 복사, 석연찮은 사모펀드 투자의혹 등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자 때를 같이해 여당과 법무부에서 튀어 나온 말이다.

이는 형법 126조에 규정된 것으로 검찰, 경찰 등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범한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수사과정에서 알게된 피의 사실을 기소전에 공표하는 경우 성립하는 죄를 명문화 한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에 해당하는 자격정지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실제 사용되지 않는 사문화된 법이다.

왜냐하면 이법이 자칮 수사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수사 위축으로 공익성이 심대하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과 경찰청 훈령으로 예외규칙을 세워 공표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기소전이라도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하거나 수사에 지장을 초래하는 중대한 오보, 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이거나 범인 검거나 중요한 증거 발견 등 주민의 협조를 요하는 경우 수사사건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몇가지 예외 규정을 만든 것이다.

중요한건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개인의 인격침해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이나 언론이 당당하게 제 임무를 수행 하는데는 범행을 구증하고 그러한 사실을 낱낱이 알리는 것이 ’정의실현‘과 ’국민의 알권리‘라는 법익의 가치를 우선 하기 때문이다.

조국 법무장관 가족 일탈사건이 검찰수사로 수면위로 부상되자 뜬금 없는 말이 마구 나돈다.

그동안 사문화 됐던 ’피의사실 공표죄‘를 필두로 검찰총장을 배제시킨 수사단 재구성, 수사중인 특수부 축소 등 검찰 수사관들을 힘들게 하는 말이 법무부 주변에서 매일 같이 생산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면 입단속을 시켜야 한다.

더군다나 제 가족이 수사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렬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주문한 것이 엊그제다.

진보진영의 거두이자 386 운동권 인사들의 대부격인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는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조국 법무장관 임명은 정당정치를 무시하고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배제한 독재정치라고 비난 한 바 있다.

지금 2000여명의 대학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나섰다.

대학생들도 연일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런 뜬금 없는 말이 먹혀 들기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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