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를 위한 변명
86세대를 위한 변명
  • 윤용기
  • 승인 2019.11.28 0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6세대 용퇴가 아니라 성찰이 필요한 시기
제대로 된 나라 만들 수 있게 힘 모아 줘야
윤용기 전남취재본부장
윤용기 전남취재본부장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쇄신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다. 그 쇄신 바람의 칼날이 민주당에서는 엉뚱하게도 ‘86(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세대를 향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기득권화 되어가고 있는 86세대의 ’자성’ 촉구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이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쇄신은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의원 등 4선 이상의 중진들의 퇴진을 통한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할 때지 86세대의 퇴진을 통한 쇄신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는 판단이다.

이런 ‘86용퇴론’은 조국 전 장관 사태 파동 후 이철희, 표창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발단이 되어 민주당 안에서 촉발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급작스런 총선 불출마와 정계은퇴 선언이 ‘86용퇴론’에 불을 붙인 꼴이었다.

86용퇴론을 주장한 세력들은 “86세대가 우리사회의 상층부 독점한 기득권세력으로 지금의 헬조선이 있게 한 책임이 크니 물러나야 한다”면서“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도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86세대는 독재를 몰아낸 영웅세대가 맞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득권이 되어 버린 세대, 괴물과 맞서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된 세대로 비판하면서 스스로 용퇴해줄 것을 주문한다.

이들은 한국형 위계 구조 속에서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한 86세대가 우리사회의 불평등을 고착화시켰으며 공정성과 형평성을 저해해 생산성과 효율성도 떨어지게 하는 무능한 세대라는 불명예도 덧씌운다. 젊은 시절 온갖 시련 속에서도 온몸을 바친 투쟁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해냈던 세대라는 상징성도 역사속의 유물로 취급한다.

이들은 또 86세대를 축복받은 세대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부모들의 노고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풍요로운 10대를 지내면서 과외금지와 대학 입학정원의 확대 등으로 입시에서 다른 세대에 비해 큰 혜택을 받은 세대라고 비꼬기도 한다.

86세대는 IMF 시기에도 직장 내에서 허리 역할에 위치한 덕에 해고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이후 경제 호황을 겪으며 소득도 크게 늘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흐름을 잘 타 큰 부도 쌓을 수 있었던 ​한마디로 넘치는 행운을 누린 세대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86세대에서 그런 혜택을 누린 부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86세대의 주류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음지에서 말없이 생활인으로 종사하면서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향할 때는 맨 먼저 회초리를 들고 광화문 앞으로 달려가는 조국애(祖國愛)가 가장 뜨거운 세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86세대는 이전·이후 세대와는 분명하게 다르다. 산업화 세대에선 개인의 근면이 중시 했다면 36세대는 조직의 연대를 중시한 세대다. 이들은 다른 세대의 수준을 뛰어넘어 훨씬 더 조밀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연대해 왔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전대협이 그랬고 민노총이 그랬다.

앞선 76세대(긴급조치 세데)는 유신체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고립 분산되어 저항하면서 어렵게 성장했다. 하지만 86세대는 전국적인 연대를 바탕으로 6월 민주항쟁을 승리를 이끌어낸 세대다.

연대를 중시한 이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그 헌신성 또한 높았다. 어려운 시국상황이나, 각급 선거과정에서 보인 이들의 집단적인 헌신성은 지난 역사가 증명한다. 더불어 이들은 대학시절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역량도 탁월한 잘 훈련된 인재들이었다.

이런 연대와 헌신성, 역량은 86세대가 20대 때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호령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들의 이런 장점이 다른 세대들의 부러움의 대상되어 또 다른 시기심과 부정적인 비판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86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이 회자되고 있는 시기에 ‘조국 전 장관 파동’으로 '공정'이라는 단어가 세간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86세대는 이미 기성화 됐으니 물러나야한다는 86세대용퇴론이 등장 했다.

하지만 86세대 용퇴론의 진원지가 차기 총선을 준비하는 청와대 비서출신 세력으로 지목되면서 용퇴론도 힘을 잃고 있다. 86세대를 퇴출시켜 그 빈자리를 청와대에서 나온 인사들로 채우는 인적쇄신은 순리가 아니라는 이유다.

86세대가 기성화 되어 국가발전의 암적인 존재론 자리하고 있다면 물러나는 것이 맞지만 이것은 아니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지금은 다른 무엇 보다 86세대가 처음 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초심을 얼마만큼 실천해 왔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86세대가 정치적 민주화에 기여한 세대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86세대가 해야 할 몫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생각이다.

86세대 이후 경제 사회적 환경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X세대나 밀레니엄 세대에게도 나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길도 열어 줘야한다.

민주진영의 제도정치권 안에서 신뢰받는 중추로 성장한 86세대들에게 이미 기득권화 됐기 때문에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쌓은 기량으로 수구 기득권집단에 맞서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일에 앞장설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지금은 그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충분히 발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힘을 모아 줘야 할 때라 생각한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