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표정사(黃標政事)와 공정, 그리고 공피고아(攻彼顧我)
황표정사(黃標政事)와 공정, 그리고 공피고아(攻彼顧我)
  • 이월태 시민논객
  • 승인 2021.04.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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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태 시민논객<br>(화순 전주광고 대표)<br>
이월태 시민논객
(화순 전주광고 대표)

이해인 수녀의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는 시를 읊어본다.
「한순간을 만났어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매순간을 만났어도 잊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좋은 날에 함께 했던 사람도 있고, 내가 힘들 때 나를 떠난 사람도 있다.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관심을 가지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

필자가 한번은 정치적 식견이 남다른 어느 분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A조직의 수장이 되면 좋을까요?”했더니, “나하고 친한 사람이 A조직의 수장 되면 좋겠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보통 사람들도 과연 자신과 친한 사람이 A조직의 수장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단종실록’2권, 단종즉위년 7월 2일 계사 3번째기에 이런 글이 있다.
「이번 정사에서 의정부 당상들이 매일 빈청에 나아가고, 이조․병조 당상 논의에 참여하여, 제수하는 대성․정조․연변 고을의 장수와 수령은 반드시 3인의 성명을 썼으나, 그 중에 쓸 만한 자 1인을 취하여 황표를 붙여서 노산군이 다만, 붓으로 낙점할 뿐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황표정사(黃標政事)’라고 일컬었다.
쉽게 얘기하면 어린 단종인 노산군을 대신하여 의정부 대신들이 누런 종이, 이른바 ‘황표(黃標)’를 붙이면 임금이 그대로 관리를 임명하는 인사제도다.

이 제도를 시행한 대신이 김종서, 황보인 같은 정승들이었으며 그 결과 인사를 담당했던 이조(吏曹)는 고유의 영역을 의정부에 내어주면서 삼정승의 권력이 커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군주가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당시 수양대군은 이와 같은 상황에 분노하여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명분으로 계유정란을 일으키게 됐다.
당시 황표정사와 같은 인사제도는 인사를 담당했던 이조(吏曹)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었으니, 공정한 인사가 무너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현재 한국이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인 대유행을 겪고도 방역선진국의 위상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인사를 잘한 것에 대한 결과로 여겨진다.
조ㆍ일 7년 전쟁(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임금이나 조정신료들에게 이순신 장군은 그리 탐탁치 않는 인물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는 인사에 필요한 연줄이나 관계 맺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전장(戰場)만을 생각하는 장수였으니 더욱 그러했을 게다. 당시 조선 조정은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국난 앞에서 적어도 왜적을 상대로 ‘쩍’ 소리라도 내볼 수 있는 장수를 발탁했여야만 했다.
그런 전장에서는 ‘황표정사’와 같은 인사는 통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청년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 중에 하나가 바로 공정가치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정부든 간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지금도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역사 속에서나 존재하던 ‘황표정사’가 은연중에 자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혹시라도 어떤 조직에서 과정만 공정한 것처럼 그럴싸하게 공모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정의 가치에 대한 이 시대 청년들의 외침을 새겨들어 볼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조직의 수장이나 책임자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혹시 관계맺기 만을 잘하는 사람을 발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요즘은 세상이 맑고 투명해 져서 정보를 공유하는 속도가 빨라져서 순식간에 소문이 확산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허브(hub)와 노드(node)로 촘촘하게 네트워크(network)되어 있는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일처리라면 모르되,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일이 잦아진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가 작동하게 돼 결국 하나의 민심(民心)으로 표출되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큰 틀에서 보면 공정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민주국가시스템을 정비해왔었다고 본다.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디테일(detail)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선을 11개월여 앞둔 현 상황에서 ‘공피고아(攻彼顧我)’라는 말이 새삼 생각이 난다.
왜냐하면 상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각자가 공정가치 실현을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 그 허물이나 허점은 없는지를 먼저 살펴야 원하는 캠페인(campaign)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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