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먼 도시에 사는 내게 싱건지를 담아 보내 주신다. 내가 한 겨울을 날 정도로 많이 보내 주셔서 작은 김치냉장고를 반나마 차지할 정도다. 내게 있어 겨울은 어머니표 싱건지를 먹는 계절이다.
나는 싱건지를 떼어 놓고는 도무지 겨울을 상상할 수가 없다. 밥상에서 싱건지는 귀물(貴物) 취급을 받는다. 다른 반찬들은 싱건지를 중심으로 주변에 놓여 있다. 배추김치, 브로콜리, 당근채, 그리고 서해안 어디 뻘에서 캐왔을 조개가 든 미역국이 차려진 조촐한 밥상이지만 싱건지가 밥맛을 압도적으로 북돋는다.
싱건지는 겨울의 별미다. 만일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 싱건지는 밥상에 놓인 한 편의 애송시(愛誦詩)다. 나는 싱건지를 먹을 때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애송한다는 기분이다. 사근사근한 무 조각, 숨이 아직도 약간 살아 있는 듯한 배추 조각, 그리고 시원하다고만 해가지고는 설명이 안되는 싱건지 국물.
싱건지 독을 열면 살짝 살얼음이 얼어 떠 있다. 살얼음을 제치고 커다란 무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식칼로 무 대가리쪽에서 아래로 가지를 썰 듯이 길게 여러 번 썰어 내린다. 그 다음 먹기 좋게 다시 가로로 토막토막 썬다. 무 잎도 입에 들어가기 좋게 썬다. 배추 포기도 몇 잎을 떼내어 가로로 썬다. 이것들을 작은 반찬그릇에 넣고 국자로 싱건지 국물을 몇 번 떠서 채운다. 이 준비 과정에서 벌써 내 입에서는 혀의 미뢰들이 들고 일어나 맛을 지레 짐작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해마다 싱건지를 보내 주시면서 국물이 좀 짤 것이니, 맹물에 소금을 적당히 넣고 끓인 뒤에 싱건지 국물에 섞으라 하신다. 택배로 원액을 다 보낼 수가 없어서 그런 편법을 일러주신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 집에서 먹던 싱건지 맛을 재현하지 못하고 만다. 물과 소금의 비율을 암만해도 맞춰낼 수가 없다.
올해는 어머니께서 이런 내 형편을 짐작했는지 아예 어머니표 국물까지 보내 주셨다. 내가 따로 그 난해한 국물 제조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원액 국물이 온 것이다. 코카콜라는 원액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보내오면 여기서 그걸 기본으로 레시피대로 캔에 넣는다던가.
싱건지 맛은 천하일미다. 어머니는 국물에 ‘별의 별것’이 다 들어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과, 배는 물론 하여튼 굉장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여러 가지 재료의 맛들이 하모니를 이루어 그 맛은 톡 쏘는 듯, 약간 단 듯, 약간 짠 듯, 선선한 찬 기운이 녹아 있는 듯, 맛을 형용할 수가 없다.
순전히 어머니가 만들어낸 우주의 맛이다. 이 오묘한 싱건지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나는 95세 되신 어머니가 더 오래 살아계셔야 할 간절한 이유를 추가한다. 어머니의 싱건지 제조 비법은 싱건지 독 한 켠에 감추어 둔 마포 주머니에서도 흘러나오는 것 같다.
내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의 마포 주머니에는 온갖 양념이 추가로 들어 있다. 내 눈에 얼비쳐 보이는 것만 헤아려 붉은 고추, 생강, 당근, 그리고 주머니를 열면 안될 듯하여 더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그 양념 주머니는 싱건지를 다 먹어 독을 비울 때까지 싱건지 지킴이처럼 거기 있을 것이다.
“어머니, 싱건지 국물이 최고 별미여요.”
“싱건지 국물 속에 넣어 놓은 양념 주머니는 싱건지를 다 먹고 나면 나중에 버리지 말고 말려서 잘 보관해라.” 마포는 나중에 재활용하는 데 쓰실 작정이신가보다.
싱건지를 먹는 방법은 따로 없으나 내가 싱건지를 밥상에 올려진 한 편의 시라고 한즉슨 오늘처럼 눈 오는 동짓달 밤에는 밤중에 홀로 식탁 위에 싱건지 그릇을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맛이 단순한 반찬의 지위를 떠나 인생의 맛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무 조각을 씹을 때 이가 시리도록 쏘는 쩡한 싱건지 맛이 온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살아 있음을 온몸에 번지는 싱건지 맛을 통해 강렬하게 자각하는 것이다.
함흥이나 경흥 같은 먼 북국에서 겨울 한밤중에 냉면을 먹으면서 동치미를 곁들여 먹는다고 옛사람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북국에는 밤마다 날마다 눈이 오고, 밤중에 냉면에 동치미를 먹는 그 사람들은 행복하였으리라.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맨 먼저 싱건지를 찾을 것이다. 아들이 이 싱건지 맛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어머니도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을 이어주는 탯줄 같은 싱건지맛, 그리고 창밖에 눈이 오는 겨울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