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결실을 맺고, 이윽고 계절은 겨울에 당도한다. 즉, 끝에 이르른다. 한해를 지내고 보았을 때 그렇게 보인다. 하나 겨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준비기라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겨울은 할 일을 마치고 난 뒤의 적요가 지배한다. 모든 물상이 휴식을 취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이 드라마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겨울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내가 알아챈 것은 그러나 겨울은 휴식을 취하는 계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겨울은 겉으로는 휴식기에 있는 듯하지만 쉼없이 지하운동을 한다. 봄을 잉태하기 위해서다. 눈이 오고, 맹렬한 추위가 닥치고, 얼음이 꽝꽝 얼고, 이것들은 다 푸른 봄을 회임하기 위해서 겪는 모진 시련들이다.
하늘과 땅이 벌이는 합작 공사 준비의 모습이다. 나는 어느 편이냐 하면 세상 처음에 봄이 있었다고 믿지 않는다. 맨 처음 세상에 겨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긴 빙하기를 거쳐서 푸른 봄 같은 시기가 도래했다고 짐작한다. 따지고 보면 한해도 마찬가지다. 한해의 진정한 시작은 겨울이다. 12월, 1월, 2월은 얼마나 추운가? 4월에, 봄이 겨울 뒤에 오는 것이다.
얼어붙은 겨울 대지에는 푸른 기운이 한 점도 없다. 황량한 사막 같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그 대지 아래서는 나무뿌리, 풀뿌리들이 물을 찾아 더듬으며, 오소리며, 반달곰 등이 제 집에서 겨울 전에 몸에 쟁여 두었던 영양을 취하며 동면하고, 개미들도 굴속에 쌓아둔 식량을 먹으며, 봄을 준비한다.
겨울이 없이 어떻게 푸른 봄이 움터날까. 수십 년 전에 읽은 어느 시인의 입을 빌려 나는 ‘봄의 내력은 춥다’라고 쓴다. 이것은 대지가 펼쳐보이는 장대한 봄의 서사를 요약한 시다. 푸르름에는 혹독한 겨울 추위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런 자연의 비밀을 다 모른다. 애써 봄을 한해의 첫 계절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봄에 첫 싹이 트는 것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고 싶어서다. 삼국시대, 그 시절엔 우리 땅이나 다름없었던 지금의 중국 장춘(長春)을 우리는 이두로 ‘눌견’(訥見)이라고 쓰고 ‘늘 봄’이라고 읽었다. ‘눌’(訥)은 ‘늘'을, ‘견’(見)은 ‘보다’의 뜻을 차용해서 ‘봄’으로 새겼던 것이다. 북국의 봄은 너무 짧다. 그래서 일부러 장춘이라 이름한 까닭이다.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봄을 만물의 시작으로 보고 싶어하는 것은 같다. 잘 보라. 겨울은 속에 봄을 품고 있다. 암탉이 달걀을 몸 안에 품고 있듯이. 어느 날 들판에 푸른 싹들이 트면 그것은 봄의 출산이다. 그러므로 모든 푸르름의 어머니는 겨울이다. 동짓날이 지나면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여름으로 간다는 것이다. 탄허 큰스님한테서 들은 소식이다. 반면 하짓날이 지나면 땅의 기운이 하늘로 오른다고 한다. 겨울로 간다는 말이다.
내가 공부를 다시 할 수 있다면 천지만물의 운행 법칙에서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 싶다. 겨울은 침묵, 적요, 동면, 휴식의 계절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봄의 출산을 위해 혹한의 한파 속에서 인내, 고통, 침묵을 안고 견딘다. 이것이 겨울의 비밀이다. 겨울의 비밀을 이해한다면 왜 만물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은 계절의 변화를 빼박은 모습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회임하고, 출산하고, 기르고, 그리고 아이는 노년을 맞이해서 생을 마감한다. 계절의 운행 질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겨울에 봄이 안 온다고 발을 구를 일이 아니다. 겨울이 온다고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천지만물이 겨울, 봄, 여름, 가을로 진행되는 것은 전 우주적인 질서다.
인간은 언제부터 세상 모든 일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모든 일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에도 처음이 있고 종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계절의 오고 감을 보면서 알아낸 것이 아닐까. 태양도, 달도, 별도, 모든 눈에 보이는 형상은 태어나 자라고 죽는다. 나는 인간이 시작과 종말을 알게 된 것은 봄, 여름,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오는 것을 보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바깥은 지금 춥다. 대지가 봄을 잉태하는 중이다. 눈이 내려서 살포시 대지를 덮는다. 그 위로 추위가 스쳐간다. 겨울이 품고 있는 봄이 푸른빛을 머금는 순간이다. 푸른 내력은 늘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