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동이
복동이
  • 문틈 시인
  • 승인 2024.02.1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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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동이는 올해 만 13살이 되었다. 말티즈 잡종인데 사람으로 치면 80대에 접어든 나이다. 귀도 잘 안 들리는 듯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물리기도 몇 번 했다. 그래도 외출에서 돌아와 큰 소리로 부르면 현관 쪽으로 나와서 눈길을 마주친다.

옛날처럼 극성스럽게 뛰면서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지는 않는다. 복동이도 많이 늙은 것이다. 아직은 밥을 잘 먹고 배설도 문제가 없긴 하지만 기력이 쇠해진 모습이 역력하다. 먹고 배설하는 때 말고는 하루종일 잠만 잔다. 아는 분이 산을 갖고 있어서 복동이가 세상을 떠나면 그곳에 묻어 주기로 하고 미리 터도 정해 두었다. 복동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최대한 잘해 줄 마음으로 있다.

개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략 1만 년 전부터 인간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본디 늑대였는데 때로 사람이 먹을 것을 버리면 그것을 먹으러 왔다가 인간과 친해져 개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구소련에서 몇 대에 걸쳐 늑대를 길들여 개로 변화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 한다.

나한테는 복동이는 반려나 다름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책하러 같이 나가곤 했는데 겨울이 오고부터는 집 안에서만 지낸다. 복동이도 이렇게 지내는 것이 참 답답할 것이다. 봄이 오면 느린 걸음으로 함께 바깥에 나가 복동이 콧구멍에 바깥바람을 넣어줄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는 애견 인구가 1천2백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개를 기른다는 이야기다. 요즘 보면 유모차에 개를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기를 싣고 다니는 경우보다 개를 태우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아질 정도다. 유모차가 그렇게 사용될 줄은 상상도 못한 풍경이다.

사람들이 개를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개의 본성이라고 할 특유의 충성심에 이끌려서가 아닌가 한다. 한번 주인과 인연을 맺으면 개처럼 인간에게 충성을 바치는 경우는 달리 없을 것이다.

내가 한때 알고 지냈던 어떤 정치인한테 직접 들었는데 무슨 일로 기르는 개를 버리려고 집 문을 닫고 안 열어주었더니 사흘 밤을 찾아와 문을 마구 긁어대더라고 했다. 그래도 안 열어주었더니 그 후로는 안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관저인 경무대에서 지낼 때 몇 마리 개를 길렀는데 그중에서 해피라는 개와 더없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6·25 때 인민군이 남침하자 급히 서울을 비우고 대전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갔을 때 개들을 미처 못 데리고 갔다. 피난 중 내내 개들을 몹시 그리워했다.

9.28 수복이 되어 서울로 돌아왔을 때 기적적으로 해피가 경무대 앞에 나타났다. 비서가 문을 열어주자 갈비뼈가 앙상한 개가 이 대통령에게 필사적으로 달려와 안겼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얼마나 반겼는지 이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4.19가 일어나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얼마 안 있다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난다. 이때도 개를 데리고 가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이화장에 두고 온 해피를 너무나 그리워해 주변의 여러 사람이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어 비밀리에 ‘해피 공수작전’을 벌여 하와이로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해피가 하와이 세관의 검역소에서 까다로운 검역을 받는 한 달 동안 이 대통령은 매일 해피를 찾아가 만남을 기뻐했다고 한다. 이 뉴스가 미국 신문에 보도되자 당시 한국 정부는 관련 공무원들을 관리책임을 물어 문책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복동이는 그다지 영리한 편도 아니고, 애교를 떨어 나를 특별히 기쁘게 해주지도 않는다. 하는 일이라는 것이 일반 사료보다 고기 같은 맛있는 먹을거리를 탐하고 거실 여기저기에 함부로 배설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는 행동만 보아서는 그 이름난 정치인처럼 내다 버릴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복동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살 것이다.

개를 기르는 데는 손이 많이 간다. 정기적으로 목욕, 미용도 해 주어야 하고, 낑낑대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한번 병원에 가면 보통 4, 5만 원이 훌쩍 넘고 많게 백여만원도 넘을 때가 있다. 복동이의 생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한 식구나 다름없는데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말 못하는 개이기에 더욱 정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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