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진다. 일 년 중에 봄이라는 계절이 있다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꽃들은 값없이 피었다가 값진 모습으로 진다. 참 아름다운 봄이다. 올봄은 더욱 찬란했다. 특히 벚꽃은 압권이었다. 벚꽃은 필 때도 화사하고, 질 때는 더 아름답다.
해마다 벚꽃은 만개하고 한 사나흘 피었을 때쯤 비바람이 불어 꽃들이 지곤 했는데, 올봄은 그렇지 않았다. 화려한 벚꽃이 아우라를 빛내며 거의 일주일 가까이 꽃잔치를 벌였다. 운 좋게도 내내 비바람이 불지 않았던 탓이다.
나는 날마다 벚꽃 그늘 아래를 걸었다. 터널처럼 이어진 화사한 꽃그늘의 길을 걸었다. 이따금 실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들이 하르르 하르르 꽃눈발이 흩날렸다. 나는 꽃눈발이 휘날리는 풍경 안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법열과도 같은 기쁨으로 멈춰 서 있었다.
꽃잎들은 마치 나 하나를 축복하는 듯 머리, 어깨, 가슴, 바지에 눈처럼 내려앉았다. 봄날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꽃눈발이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흩날려 나를 감싸 안는 순간 나는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을 하려고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내가 죽어라 살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은 하잘것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그냥 내가 봄이 되었다. 봄꽃이 되었다.
꽃들이 만개한 벚나무길을 걸으며, 흩날리는 꽃눈발 속에서 나는 오직 행복, 기쁨, 황홀감이 내 마음과 몸을 가득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죽는다 해서 아쉬울 것이 없을 그런 순간이었다.
내가 그 선경에서 깨어났을 때 바닥에는 벚꽃잎들이 무늬처럼 떨어져 있었고, 위에는 아직 지지 않은 벚꽃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땅에는 떨어진 꽃, 하늘에는 떨어질 꽃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마치 벚꽃들이 꽃무늬처럼 새겨진 카페트를 깔아놓은 듯한 꽃길을 함부로 걸을 수 없어 한 걸음 한 걸음 꽃잎이 없는 빈 데를 디디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 옷에 떨어진 꽃잎들을 함부로 둔 채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려 누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떨어지는 꽃잎들 때문이었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모른다. 눈발처럼 허공에 마구 흩날리는 찬란한 벚꽃들이 나를 감싸 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말로는 무어라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나는 영혼을 맡겼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있었다고 할 그런 날들을 보냈다. 오늘 며칠 만에 밖에 나갔더니 벚꽃은 이미 흔적도 없이 다 지고 초록 잎새들이 돋아나 있었다. 이제 풍경은 꽃철에서 잎철로 가는 중이다.
나는 신열을 앓는 듯한 며칠을 보내고 마주한 봄날의 풍경에서 생(生)의 감격을 처음 겪어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보아라, 여지껏 네가 힘들어한 것들, 그 아픔, 그 슬픔, 그 안타까운, 그 분노 들이 어디 있는지, 그렇게 묻고 있는 듯했다.
나처럼 나이 든 남자도 때로는 울어야 할 필요도 있는가 싶다. 그것이 꽃눈발 때문이듯, 하늘에 번지는 저녁노을 때문이듯,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봄날에 한 번쯤 울어주는 것이 자신을 감싸 안는 두 팔의 위로를 받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기는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로 다 형용할 길이 없던 벚꽃이 만개한 풍경은 사라지고 없으니 말이다.
꽃들은 피어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물음이 문득 떠오른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슬픔은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환상을 본 것인가? 아니다. 꽃들은 피어서 지고 마지막엔 ‘저 너머’로 간다.
그 놀라운 감동의 장면들이 한갓 순간의 환영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과 찬란함, 화사함을 저 너머의 세계에 사진을 찍듯 새겨둘지도 모른다. 나는 진정으로 믿는다. 내가 세상에 와서 한 말들은 벚꽃잎들이 어딘가 저 너머로 가서 새겨져 있듯이 한 마디도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내가 흐느낀 울음소리조차도.
언젠가 우리는 시공의 끝 저 너머를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내가 찬탄하고 감격해했던 봄날의 벚꽃들이 흩날리던 장면을 함께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