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손
흙 묻은 손
  • 문틈 시인
  • 승인 2024.06.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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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공부를 하러 처음 서울에 가서 놀란 것은 저 많은 사람이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느냐 하는 것이었다. 도시 전체가 시멘트 빌딩으로 뒤덮여 있는데 대체 빌딩 내에서 농사짓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뭘해서 먹고 사는지 그것이 되게 궁금했다.

농경사회에서 논밭에 곡물을 기르고 가축을 치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믿고 살아온 젊은이에게 처음으로 맞닥뜨린 도시의 모습은 그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이른바 회사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족은 다 가상현실에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일인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인가, 하고 아주 오랫동안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이미 도시인으로 살아온 날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지금도 가끔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종사하는 일들에 대해서 없어도 될 일이 태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제1의 생산물이 아닌 것에 대해 아주 가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가령 도시에 가장 많이 눈에 뜨이는 식당을 예로 들어보면, 식당이 없다면 집에서 밥을 지어 먹거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 된다. 식당은 필요불가결한 업종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용실이나 이발소가 없다면 코로나가 유행한 지난 3년여 동안 이발소 한 번 가지 않고 집에서 가위로 머리를 다듬어 온 나처럼 해결하면 된다. 극단적으로 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도시의 점포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꼭, 그것이 있어야만 사회가 작동되는 것이 아닌, 필수 업종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냥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농사짓는 농사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 광산에서 석탄을 캐내는 광부 같은 일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마지막까지 결코 없어서는 안될 직군에 종사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 나는 내가 먹고 살아온 지난 일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농사꾼도, 어부도, 광부도 아닌 이른바 화이트칼라로 살아왔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까스로 작은 아파트를 장만하고 지내고 있을 때 농사짓는 내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가 내 집을 방문해서 하는 말이 대단했다.

“야, 너 참 대단하다. 볼펜 뒷꼭지 눌러서 이렇게 집도 사고 먹고 살다니!”라고 해서 나를 뭉클하게 했다. 안 잊히는 그 말이 이제 와 다시 생각하니 나를 되레 부끄럽게 하는 말이었다. 그럴 것이 내가 먹고살기 위해 한 일이 사회를 작동시키는 필수 직종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글을 쓰는 일이 사회에 도움이 되었던가? 반드시 있어야 할 직업이었던가?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회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잘 돌아간다. 내가 해온 일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일이나 다름없었다고 돌이켜 본다.

대체 내가 쓴 글들이 사람들에게 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이런 자문을 해볼 때 나는 한숨밖에 안 나온다. 이런 생각의 끝단에는 나는 하잘것없는 일을 하면서 빌어먹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마저 드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더 확대하면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라는 것도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것일 뿐 마지막 때까지 사람들 먹여 살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없어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허공에 뜬 환상을 만족하게 하는 산업이니, 정보화니 하는 것들은 제1 생산품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산업화, 정보화를 부정하거나 게 내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인류문명 발달을 이끌어가는 일들이다. 다만 냉정하게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필수적인 것을 따져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전쟁이 났다고 가정해 본다. 궁극적으로 필수불가결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용할 양식으로서 쌀이요, 석탄이요, 고기 같은 것일 것이다. 인류사의 마지막 때까지 인간의 삶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전우주적인 직종이 그것이다.

아들은 내 말을 듣고는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자고 한다. 그것이 정직한 생계수단이라는 것이다. 평생 손에 흙 한 번 안 묻히고 살아온 내 삶이 어쩐지 미안하고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밤 한 숟가락 뜰 때 뙤약볕에서 농사를 짓고, 풍랑을 해치고 고기를 잡고, 막장 굴에 들어가 석탄을 캐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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